감당하지 못할 불편함
학부시절 정말 '잘 나가던' 형이 있었다. 그 형은 키도 180cm으로 적당히 컸고, 멀끔하게 생겼으며, 노래도 잘할 뿐 아니라 말도 잘하는 편이었는데 거기다 성실하기까지 했다. 케이블에서도 시청률이 낮게 나온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리얼리티쇼에 출연도 했고, 소속사도 있었던 그 형은 잘 놀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확인이 된 적은 없지만 그 형에 대해서는 나이트에서 여자를 만났다던지, 무용학과를 나온 사람만 만난다는 소문이 항상 있었다.
학부시절을 그렇게 화려하게 보낸 그 형은 굉장히 좋은 금융권 회사에 취업을 했고, 그 형을 아는 지인들은 모두 그 형이 높은 연봉을 받으니 화려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형은 취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업무로 만난 다른 금융권 회사에 다니는 여자분과 결혼하더라. 그 형 나이 서른, 형수님 나이 스물일곱의 일이었다.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결혼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 사람들은 그 형이 왜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빠른 시일 안에 결혼하는 지를 궁금해했다. 형수님의 외모에 많은 시선이 쏠린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형수님은 연예인급의 외모를 가졌다거나 엄청나게 화려한 사람이 아니었다. 단아하고 차분한 이미지에 인상이 굉장히 좋으셨지만 '아름답다'는 표현은 어울려도 '예쁘다'는 표현은 맞지 않으신 형수님의 외모를 보고 어떤 이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외모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녀 모두 그 형의 아내는 조금 더 화려한 외모를 갖고 있을 줄 알았다.
그 형이 결혼한 이후, 그 형이 참석한 모임의 가장 큰 화두는 당연히 그 형이 왜 그렇게 빨리 결혼했는지에 쏠렸다. 그 형과 형수님은 다른 회사에 다녔지만 업무 상대로 만났고, 형수님 집안은 부족함은 없었지만 집안 때문에 결혼을 다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형은 결혼을 결정한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단점이 없었어.'
장점을 볼 것인가? 단점을 볼 것인가?
갓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주위에 결혼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내 입장에서 그 대답은 조금 황당하게 느껴졌다. '결혼은 장점을 보고, 평생을 함께 할 만한 이유를 찾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분위기를 보니 그 형의 대답을 들은 그 모임 참석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누구도 그에 대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형수님께서 가지신 장점은 굉장히 많으실 것이다. 그 형의 결혼생활을 간접적으로 옆에서 보니 분명 그렇다. 그런데 그 형이 결혼을 결정한 이후에 갑작스럽게 단점에 대해 말한 것은 왜일까? 그건 우리의 질문들이 '결혼'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형수님께서 갖고 계신 좋은 점은 그 형이 형수님과 연애를 시작할 때 이미 충분히 알았을 것이고, 그건 아마 그전에 만났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누구나 연애는 감정이 움직이고, 상대의 좋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시작된다. 물론 두 사람의 그러한 시선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연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결혼을 결심할 때도 상대의 장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물론 상대의 더 좋은 점을 알아가는 것도, 그리고 그 장점 때문에 신뢰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만약 지금 상대에 대해서 장점만 보인다면, 그건 어쩌면 그 뒤에 내가 보고 느끼지 못하는 단점, 또는 본인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상대가 지금의 연애를 위해서 맞춰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수록 그 형의 대답에 공감이 갔다. 그리고 그 형이 그 말을 30살에 했다는 게,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놀랍게 느껴지더라.
결혼은 현실이다.
결혼은 현실이다. 이 말은 결혼생활은 장밋빛과 핑크빛으로 가득 찰 수는 없단 것을 의미한다. 기혼자들은 결혼에 내가 '결단'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듣고 너무 과격한 표현이 아니냐고 했지만 사실 주위 기혼자들을 보면 결혼은 어느 정도의 갈등을 각오하고 결단해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연애가 아닌 결혼에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더 중요하다. 사실 연애만 초기가 아니라면 일주일에 정말 많아야 2번 보고, 하루에 1시간 통화를 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충분히 꾸미고 가공할 수 있지만 결혼생활은 그게 불가능하지 않나? 연애 상대와 결혼상대는 다른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연애 상대로 좋은 사람은 두 사람이 만나거나 연락할 때 잘 맞춰주는 사람일 테지만, 결혼상대로 좋은 사람은 말 그대로 한 공간에 함께 있을 때 편한 사람일 것이다.
함께 있을 때, 그리고 인생을 같이 살아내는 것이 편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것이지 편안하고 행복함을 극대화시키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고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두 사람 사이에 일종의 편안함과 행복함이 있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사실 그 행복함이 가정을 꾸린 이후에 더 커질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결혼하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건, 한창 관계가 좋을 때는 느껴지지 않지만 두 사람이 싸우거나 불편할 때 느껴지는 불편함의 지점을 확인하는 것일 테다.
연애는 감정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결혼은 감정도 필요하지만 이성적인 결정도 필요하다. 사실 주위에서 이혼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문제가 없었다가 생긴 경우는 많지 않고, 연애할 때도 문제가 되었던 것을 '괜찮겠지'라고 간과했던 것이 같이 살면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해짐으로 인해 헤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 이혼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행복하게 살지는 않는 지인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사실 결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상대방에게서 내가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불편함, 그리고 상대의 단점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내가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결혼은 내가 상대의 그러한 면을 감당하겠다는 다짐이지, 상대가 내 모든 것을 다 받아줄 것이라는 환상을 충족시키는 통로가 아니다. 이는 상호 간에 그렇게 다짐을 하고 평생 함께 하기로 결심을 해야 한단 것이다.
그래서 연애와 달리 결혼을 하기 전에는 사실 상대에 대한 감정과 (결혼을 생각하는 시점에 감정은 이미 있는 경우가 많을 테니......) 긍정적인 면보다도 상대와 불편한 점을 본인이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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