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님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머리가 커지면서 칭찬은커녕 채찍질만 하시는 듯한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왜 어머니, 아버지는 말을 이렇게 못해주시느냐며, 왜 내게 그러서야 하냐며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그 맥락이 아니지 않냐고 대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내 가정을 아직 꾸리지는 못했지만. 내가 속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남편, 아빠라는 호칭은 아직 없고 아들로서의 지위만 존재하지만 이제는 어머니,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그러시게 되는 것들이 보이고 이제는 그분들이 말로 하지 않으셔도 그 마음이 보인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렇게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던 가족이, 표현은 못하지만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과거에 가족을 생각하면 무겁고 버겁게 느껴졌던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에서 많이 자유로워지고 독립되었는데 역설적으로 그러면서 가족은 내게 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여전히 언젠가 결혼하면 어머니께서 '쟤가 결혼하고 애가 변했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 말은 다하는 편이지만, 어머니께서 나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면이 있어야 내 아내가 될 사람에게 내 흉을 보며 두 사람이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호의를 어머니께 억지로 베풀지는 않지만 그 턱이 예전보다 많이 낮아졌음을 느낀다.
가족이 내게 뭔가를 해줬으면 했던 게 참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족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내 나름대로 정의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은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가족이 내게 그런 모습이 아니더라도, 내 가족에 내게 무엇을 해주지 않더라도, 가족은 내게 가족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사실 일상이 피곤하고 힘들 때면 부모님이 계신 집에 가고 싶을 때가 있지만 일부로 더 가지 않는다. 가 있는 그 순간에는 훨씬 안정이 되고 편하다는 걸 알지만 다시 나 혼자 있는 자취방으로 오면 내 인생의 긴장감이 나를 휘어 감는 게 마치 회사를 다닐 때 일요일 밤을 떠올리게 하고, 그 스트레스는 그때보다 더 하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주말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때처럼, 지금은 그래서 사실 집에 아주 자주 가진 않는다. 내 앞에 있는 과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가족은. 그냥 거기에 있는 자체로 고마운 존재다. 내가 어떤 상황이든지, 무엇을 겪고 있든지 그 자리에 묵묵히 나를 위해 서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가족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연세가 드시면서 부모님께서 잔병치레는 하시지만 크게 편찮으시지는 않은 것이 참 감사하다. 그런데 욕심이 있다면 이제 지금의 부모님 말고도 부모님이 한쌍이 더 있었으면, 그리고 나를 위해 그 자리에 서 있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내가 항상 그 사람을 위해 서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땐 굳이 가족을 보고 돌아오고 나서 감정적, 정서적 후폭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도 될 테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을 테니까. 오랜만에 가족을 보고 돌아왔더니 그 후폭풍이 어마어마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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