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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가족, 그리고 연애

너는 내 단점까지 너무 닮았어.

어머니께서 야단을 치시다가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셨다. '넌 내 단점까지 그대로 닮아서, 그런 모습들을 보면 너는 좀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라고 말이다. 그렇다. 나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런데 어머니만 닮은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왜 저러시지?'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면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할아버지와 비슷하시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는 아버지에게서 최근 들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구도 가족에게서 자유롭지 않다.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경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수준에서 사건이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란 얘기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우유니 사막에 대해서 아무리 많은 사진과 영상을 보고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다고 해서 그곳에 있는 그 느낌을 알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굳이 우유니 사막을 예로 든 것은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장 처음 영향을 받는 상대는 누구일까?

인간의 생애를 생각해보자. 한 아기가 태어나서 3-4살까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누구와 얼만큼의 시간을 보낼까? 부모님 중 한 분만 일을 한다면 일을 안 하시는 분과, 맞벌이를 한다면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나 아이를 봐주시는 아주머니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하시는 아주머니는 '일'로써 아이를 대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주는 영향도 있지만 아기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그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이다. 이는 사실 초등학교에 갈 때까지도 마찬가지다. 즉, 10년 넘게 그 아이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가족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백지상태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경험을 보낸 가족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지 않는 아이가 있을 수 이을까? 갓난아기는 부모님의 모습을 그대로 흡수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아기들은 말 그대로 어떤 것도 칠해지지 않은 하얀 도화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론 인간은 성장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부모님의 모습에서 조금씩 변하긴 하지만) 그 사람 안에는 부모님의 생물학적 DNA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적 DNA도 갓난아기 시절에 심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누구도 가족에게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부모님은 그 사람의 미래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이토록 장황하게 가족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초기에 뜨거운 마음이 안정기에 들어서면 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는 그 가족 구성원을 보면 예측이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혹자는 여자는 어머니를, 남자는 아버지를 닮는다고 하지만 그런 공식이 그대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자지만 사실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성향이 더 많을 뿐 아니라, 내 지인들을 보더라도 그러한 패턴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대의 부모님을 모두 보면, 연인의 모든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상대가 대략적으로 어떤 성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어디에서 예측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연애를 넘어서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할 즈음에서는 어쩌면 상대 가족과도 자주 만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부부가 되었을 때 서로에게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상대방 부모님과 가족에게서 나오는 모습들이 당신의 연인에게서도 나올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분명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참고자료'와 같은 존재다.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사실 나는 선을 보고 결혼하는 것에 완강하게 반대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그리고 다양한 경우들을 보면서 어쩌면 가족끼리 정략결혼을 하기 시작한 것도 합리적이고 정당한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역사적으로 집안끼리 결혼을 시킨 것은 어쩌면 단순히 재산이나 신분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늙어갈지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물론 그 가족 구성원을 본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깨어진 경우에도 다른 경로로 수용을 받으며 건강한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부모와 접점이 별로 없어서 다른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사람들도 있다.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회복받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가족을 본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만약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에게서 거슬리는 요소를 발견했을 때,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이 바뀔 수 있는 부분인지를 판단하거나, 상대방에 대해서 잘 모르겠는 점이 있을 때 그에 대한 예측을 하는 데 있어서 그 가정의 분위기, 부모님의 성향 등은 분명 의미 있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위에서도 강조했듯이, 가족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쩌면 남녀관계에서 어느 시점엔가 이르러서는, 특히 결혼이라는 문제를 앞두고는 우리가 마음'만'으로 연애를 하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