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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아주 오래된 연인들에 대하여

015B, 클릭 B, 하현우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론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주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약속을 하고, 서로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지. 가끔씩은 서로의 눈 피해 다른 사람 만나기도 하고 자연스레 이별할 기회를 찾으려 할 때도 있지.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낀 실증은 이젠 없는 거야.

1992년에 처음 나온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라는 노래가 최근에도 다시 불렸다는 건, 아마 이 가사가 갖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로 들을 때는 그 느낌이 확 와 닿지 않지만 이 가사의 내용만 들여다보면 이 노래는 멜로디와는 달리 굉장히 가슴 아픈 현실을 그리고 있다. 의무감으로 전화하고, 사랑해서가 아니라 위로하기 위해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도 두근거림은 없는 관계. 습관적인 만남, 사랑해서가 아니라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만나면서 그 틈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연인이라니.

모든 오래된 연인들이 그러한가?

노래뿐인가? '6년째 연애 중'이라는 영화 역시 오래된 연인들의 권태기를 그리고 있고, 실제로 주위에서 오래된 연인들은 '설레임은 없고 의리로, 정으로 만난다'라는 말을 종종 뱉어내고는 한다. 과연 모든 오래된 연인들과 부부들은 그러는 걸까? 예외도 없이.

분명한 것은 상당수의 오래된 연인과 부부들은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그럴 수밖에 없다. 연애를 시작할 때는 사실 두 사람이 같이 해보지 않은 것들이 굉장히 많을 뿐 아니라 대화와 데이트를 통해서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야 할 것들도 굉장히 많다. 그래서 연애 초기에는 그 관계가 다이나믹 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재미'도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남자들은 마치 본인들만 그런 것처럼 '남자들의 이상형은 처음 본 여자'라고 하지만, 사실 여자들도 오래 만나 온 남자보다 새로운 남자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자인 나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리고 그런 얘기들은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새로움 때문에 나오는 것일테다.

반면에 오래된 연인들은 보통 데이트를 하면서 할 건 다 해 본 경우가 많다. 영화, 연극, 드라이브, 공연, 뮤지컬, 수다, 쇼핑, 여행, 놀이공원.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종류는 이 정도일 텐데, 이 조합을 돌리고 돌린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1-2년 안에 더 이상 새로워지는 게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공연을 정말 좋아해서 공연에 같이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도 있지만, 사실 공연은 연인이 아닌 사람과 갈 수도 있는 것이고, 연인이랑 가는 공연도 그게 반복되면 '새로운' 느낌은 덜해지는 것이 사실 아닌가? 대화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연인들은 사실 자신에 대해서 별로 대화할 게 없다. 전공, 취미, 특기, 성장환경, 부모님, 형제, 친구관계까지도 보통은 1-2년 정도 연애하면 어느 정도 이상 파악이 되기 때문에 말이다.

어른들이 연애 1년 정도 하고 나서 결혼하라고 조언하는 것도 그런 영향이 있을 것이다. 1-2년 정도 사귀었다면 두 사람이 아주 안 맞는 것은 아니니, 서로 싱글로 있을 때, 연인으로써의 새로움을 발견할 게 없는 시점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서 같이 살면서 또 새로운 면을 찾아내고 느끼면서 2-3년 살다가 또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새로움이 사라질 때 즈음에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둘의 관계에 새로운 게 계속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노년 때까지 정신없이 살 것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1-2년 만나고 결혼하라는 것은.

설레임이 전부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내 커리어는?'이라고 묻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커리어를 '알아봐 준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자신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행복은 궁극적으로 가정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사실 그렇지 않나? 나는 뭔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대단함도 짧으면 몇 시간에서 길어야 몇 달, 아니 1-2년 안이면 그 성과는 희석되고 또 다른 성과를 내야 할 것을 강요받지 않나? 일적으로는 말이다. 그리고 그게 엄청나게 쌓인다고 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도 아니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한들 내가 그 유명세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나는 그래서 그런 소소한, 가정이라는 범주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삶도 나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1-2년 연애를 했다고 결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1-2년 만났어도 상대와 가정을 꾸릴 준비가, 아니 가정을 꾸릴 마음의 준비 자체가 되어있지 않을 수 있지 않나? 그리고 나는 가정의 범주 내에서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건 나의 가치관일 뿐,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아직은 결혼보다 일을 하고 싶을 수 있지 않나? 그렇다면 1-2년 동안 만난 사람과는 헤어져야 한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물론 오래된 연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권태로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권태로움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익숙함, 그리고 안정감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인간은 궁극적으로 그 익숙함, 평안함과 안정감을 삶의 어느 영역에선가는 필요로 하는 존재다. 운동선수들이 하루 12시간씩 강도 높은 훈련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경쟁하면서 에너지를 쓰다 보면 사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연애 초기에 에너지를 뿜어내게 되는 연애 자체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고, 굳이 내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안식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 있다.

두 사람의 상황에 달린 문제

그런 점에서 오래된 연인이 갖는 장점은 많다. 결국 그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예전처럼 설레이지 않는다고 해서 두 사람이 서로 맞지 않는다거나, 헤어져야 하는 것은 아닌데 많은 오래된 연인들은 연인관계에선 그게 반드시 어느 정도 이상 수준으로 있어야 한단 생각에 그 관계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오래된 연인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경우에는 이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커플이 있다고 치자. 여자는 졸업하고 취업을 했는데,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서 아직 학생인 경우 여자의 경우에는 사회 초년생으로 정신이 없어서 연인에게서 안식처 같은 편안함을 원하는데 남자는 군대에 다녀와서 떨어져 있던 2년만큼의 '열렬한' 연애를 원한다면, 두 사람은 그러한 상황 변화로 인해 헤어지게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시점에 오래된 연인들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조금 더 길게 놓고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볼 필요는 있다. 과연 두 사람의 이러한 이질감이 상황적인 것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의 근본적인 성격차이로 인한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다음 글에서 설명을 하겠지만, 연애기간이 길다고 해서 두 사람이 성격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그 차이를 이제야 발견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갈등은 상황 차이로 인한 것이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바뀐 상황으로 인해 두 사람이 다시 잘 맞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결론을 너무 쉽게 내리지는 않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맞출 수 있는, 오래된 연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편안함과 익숙함이라는 선물은 쉽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언젠가는 뭔가를 계속하는 관계보다 서로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를 추구하게 되어있다. 모든 것은 관점의 문제이고,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당장 느껴지는 새로움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새로움을 상실하게 되어 있고, 인간은 누구나 새로움을 상실해 가다보면 주위에 더 이상 새로운게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는 새로움을 추구할 수 없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로움에서 느껴지는 설레임만을 추구하는 것은 꽤나 자주, 멍청한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하기에 그런 결정은 신중하게 내리는 것이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주위에서 오래된 연인과 헤어진 이후에 그런 편안함이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다른 사람과의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거나, 그 두 사람이 다시 만나서 결혼하는 경우들을 봐왔다. 물론 오래된 연인이라고 해서 그 관계가 무조건 유지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연애라는 것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빨리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은 관계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오래된 연인이 없는 내 입장에선, 그런 소중한 인연을 너무 쉽게 내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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