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오빠는 가끔 글에서 댄디한 박보검인 척하더라'라고 말했다. 당황했다. 어떤 글에서 어떤 부분이 그렇게 느껴졌을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몇몇 글에서, 특히 연애와 관련된 글에서 내 글이 굉장히 도도한 느낌으로 와 닿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혹여나 내 글을 읽은 누군가는 이 글의 필자가 글쓴이의 외모를 그렇게 상상했을 수 있단 생각에 죄송하고 또 죄송해졌다.
그렇게 느껴지는, 초연하고 쿨한 것 같은, 도도하고 청정지대처럼 느껴지는 글을 내가 쓰게 된 것은 사실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이 나의 일부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내 모든 면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이 원래 필자의 모든 면을 다 보여주진 않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여러 모습 중 하나 혹은 두 가지를 부각해서 보여주지 않나?
시간과 경험이 나의 일부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2년 넘게 사랑과 연애와 결혼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30대 후반까지 싱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찍 결혼한 사람들은 그 주제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결혼생활이라는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연애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특정 연령대에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것들을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과 연애와 결혼을 보는 시선이, 시각이 다르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으니까.
시간과 경험이 나를 바꿨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난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연애를 하고 싶은 이유가 바뀌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연애하고 싶었던 이유들이 이제는 의미가 없어지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이유의 우선순위는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 바뀌어 왔더라.
돌이켜 보면 10대에서 20대까지의 난 본능적인 내면의 욕구, 호르몬 작용과 이끌림에 의해서 움직였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말이다. 물론 그러한 요소들은 지금도 내가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요소들은 스스로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요소들이 우선순위에서 점점 내려가더라.
그러고 나서 30살 전후에 난 내가 외로울 때, 즉, 내가 너무 힘들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거나 주위에 친했던 사람들이 거의 다 결혼을 하면서 현실적으로 놀 사람이 없어지면서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건 결국 나의 힘듬을 상대를 사용해서 해소하기 위해서,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 상대를 그 순간에 이용하고 싶다는 것 아닌가? 내가 필요한 순간에 말이다. 그것만큼 이기적인 생각이 또 있을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서, 혼자서도 잘 놀고 잘 있게 되면서 난 때때로 '혼자 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러던 중 감정적으로는 외로울 정도는 아니지만 누군가와 나의 일상을, 소소한 일상을 도란도란 나누고 싶단 마음이 종종 들었고, 그때서야 난 내가 인생길을 정말 혼자서 걸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과 헤어져서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와 내가 그 모임에서 들었던 얘기들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상대의 하루가 어땠는지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점점 늘어났고 그때, 연애를 하고 싶단 마음이 들더라.
연애의, 결혼의, 그리고 사랑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닐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것. 너무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많은, 아니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대부분 연인과 부부들은 인생을 함께 걸어가기보다는 연애와 결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과제를 해결하듯이 상대를 대하지 않나?
요즘 내가 정주행하고 있는 '빌리언즈'란 미드에서 앱을 통해 20대 초반의 여성들을 가볍게 만나고 다니는 한 변호사는 자신의 그런 만남들의 끝이 행복하거나 지속되는 무엇인가를 주지는 못하고, 그 끝에는 공허함이 있으며, 그 만남은 자신이 함께 가정을 꾸렸던 사람과의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지금 다시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침대에 함께 누워서 해주고 싶은 말이, 나누고 싶은 대화가 정말 많은데 그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본인이 요즘 만나고 다니는 젊은 여자들과의 만남은 그런 관계와는 다르다고 말이다.
우리의 연애는, 결혼은 어떠한가? 우리는 연인 또는 배우자와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나? 아니면 그 관계에서 모든 것들이 하나의 과업과 과제가 되어가고 있나? 이 질문들은 한 번쯤, 아니 주기적으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질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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