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서 날 쫓아낸 친구 이야기
친구네 집에서 6개월 정도를 같이 살다 버림받았다. 거의 20년을 알았지만 서로의 여자 친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런 친구. 나야 누군가가 직접 묻지 않는 이상 굳이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다 보니 그 친구와 살면서도 만나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눈치로 보건대 그 친구는 가끔씩 짧게 만나는 사람은 있지만 연애다운 연애는 많이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
그랬던 친구가 결혼을 해서 이사해야 한단 이유로, 하루아침에 버림을 받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오래 알아온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결혼시기를 잡은 것이었다. 그러니 같이 사는 나도 친구의 연애를 알 수가 없었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결혼한단 소식에 어떤 사람인지를 물어봤더니, 이 친구, 내가 20년 가까이 알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순정남이었더라. 그 녀석은 친구로 오래 알아왔던 지금의 아내가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야 비로소 본인이 그 사람을 좋아했단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른 사람에 대한 호감을 느낀 적은 있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진 않았고, 지금의 아내가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마음을 얘기했다고 한다. 그녀가 유학을 가는 것이 확정된 상황이었고, 두 사람이 알아온 세월이 있다 보니 두 사람은 연인이 된 지 반년도 안되어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어머니는 내게 '너도 빨리 장가가야지'라는 말을 남기셨다.
다가갈 것인가? 말 것인가?
내 친구는 본인의 아내가 다른 사람과 만나고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적은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때 고백을 했다면 이미 좋아해서 만나는 남자 친구가 있는 그녀가 이 친구의 마음을 받지도 않았을 것일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어색해져서 두 사람이 인연을 맺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데 그런 일차원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난 연인이 있는 사람에게 내 마음이 움직여도 그 사람이 헤어지기 전엔 다가가거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만나고 있는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예의? 물론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두 사람이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만난 연인 사이에는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나는 만나는 사람을 자신의 방향을 돌려놓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시도를 하는 것이 시한폭탄을 심어놓는 것은, 설사 연인이 있는 사람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없다 하더라도 그걸 다른 사람이 떨어지게 만들면 마음 구석에 있을 수 있는 미련이나 물음표가 언제든지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인 간에는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두 사람이 연인이 된 이후에 다투거나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만약 다른 사람이 다가오지 않아서 계속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과 만났다면 이런 문제는 없지 않았을까?' '그 사람과도 이런 노력을 통해서 맞출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그때보다 지금 더 행복한가?'와 같은 질문이 계속 생길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연인들의 경우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지면 서로를 '나에게 했던 것처럼 언제든지 상대가 있는 사람을 빼앗아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 위험을 항상 안고 있게 된다.
물론, 시기적으로 실질적인 환승(?)이 이뤄질 수는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연인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기로 하는 결정은 본인의 결정이어야 한단 사실이다. 설사 연인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상대를 지금의 연인과 헤어지게 하기 위한 노력은,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여질 만한 행동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본인을 위해 낫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상대가 그로 인해 본인에게 실망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이상해질 수 있고, 그 시도가 잘 되어서 두 사람이 잘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
어떻게 마냥 기다리냐고 한다면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고, 빈도나 깊이는 둘째 치더라도 두 사람이 만날 일이 있다면 그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에게 느껴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본인이 상대와 그 연인을 갈라놓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본인이 상대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상대는 느끼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상대가 여자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지금의 연인과 헤어지지 않는 것은 지금의 연인에게 호감 또는 미련이 남아있거나 본인에 대한 확신이 확실히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 상황에서 상대를 헤어지도록 하기 위한, 혹은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 상대에게 그런 행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그 마음을 계속 품고 있다면 그 마음은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간접적인 말과 행동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그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상대가 본인에 대해서 그만큼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본인이 연인이 있는 상대에게 호감이 생겼다 하더라도 상대를 지금의 연인과 헤어지게 하기 위한, 또는 헤어지고 본인을 만나게 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대에게 호감이 있는 이상 그 호감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표현될 수밖에 없고, 잘 될 인연이라면 상대도 그런 호감의 힌트들을 보고 스스로 관계를 정리하거나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다. 그 결정만은 옆에서 부추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린 것이어야 한다.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조금 바뀌었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지금까지 쓴 내용이 전부였지만, 나이가 들고 나서 보니 '그 사람도 좋지만 꼭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건 만나보기 전까진 모르는 일'이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느 순간 서부턴가는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을 이유로 들어온 소개팅을 안 하는 것과 같은 선택은 하지 않는다. 마음에 둔 사람이 있을 때는 내가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지만, 누군가 새로운 만남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을 거절하진 않는다. 인연은 언제, 어디에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서 순정파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나도 지금보다 어렸을 땐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붙들고 있는 것은 순정일 수도 있지만 집착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사람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을 하다 연인이 되면, 그 사람과 만났을 때 오히려 실망을 하게 되기도 하더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상대의 좋은 점만 눈에 들어오니까.
결정적으로 나에 대한 상대의 현재 마음도 모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기엔, 어느 순간 나이가 너무 들기도 했더라. 그게 어쩌면 가장 큰 이유이고, 냉정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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