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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결혼

어쩌면 결혼할 사람에 대하여

어머니 아버지께서 내년에는 지방으로 내려가 사시겠다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하는 한 프로그램에 신청하러 내려가셨다. 그리고 같은 날 나보다 나이가 많이 어린, 내가 물리적으로 업은 적이 있는 동생이 휴가를 유럽으로 떠났다.

나 혼자 아무 일 없이 서울에 있는 그날. 이상하게 부모님과 동생이 모두 신경 쓰였다. 나보다 운전을 훨씬 오래 하셨고 잘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녀오신다는데, 두 분이 지금까지 우리 가정을 끌어오셨는데 뭐가, 그리고 왜 그렇게 신경 쓰였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가 들면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게 맞는 듯하다며 혼자 살 집을 찾아다니던 난 왜 두 분이 따로 사시는 것이 걱정이 되는 걸까? 거기에 나보다 키도 크고, 연봉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되며 영어도 편하게 쓰는 다 큰 동생은 또 왜 걱정이 되는 것일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어쩌면 가족이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대의 '객관적인 강함과 약함'과는 무관하게 상대가 걱정되고, 신경 쓰이는 것. 상대가 잘 되었으면 좋겠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는 것.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으로 그런 상태가 되고 마음이 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족이 서로에 대해 갖게 되는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얘기를 부모님이나 동생에게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신경 쓰이고 우려될만한 요소가 있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가족이라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임을 알기에. 그리고 내가 그런 티를 내거나 얘기를 하는 순간 그건 상대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알기에.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혼할 사람은 어쩌면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생각이긴 하지만 상대가 계속 신경 쓰이고, 걱정되고, 챙겨주고 싶은 사람 말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얘기할 때 설레고 콩닥이는 호르몬 작용에 의한 감정이나 현상을 주로 얘기하고, 물론 그것도 사랑의 일부이긴 하지만 사랑의 기본과 기초는 끓는 냄비가 아닌 열기를 흠뻑 빨아들이는 뚝배기가 아닐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본인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상대를 갖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상대가 신경 쓰이고 걱정되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어떤 이들은 전자와 후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자는 '크고 눈에 보이는 것'을 해주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고 후자는 '노력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마음과 에너지로 소소하지만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해주게 되는 듯하다. 

나라고 사람을 놓고 품평회 하고 판단하듯이 따진 시절이 없었겠나?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나도 모르게 사람에 대해서 그럴 때가 있다. 그런데 계산기를 두드리듯이, 꼭 상대의 학력, 재력, 나이, 집안, 키, 외모처럼 보이는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상대의 성격, 성향, 취미, 취향 등을 따지는 게 꼭 내가 정말 계속 함께 할 사람을 찾게 해 주지는 않더라. 그렇게 생각하고 따져서 잘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만난 사람들과는 항상 생각하지 못했거나 상대에 대해 몰랐던 것으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고, 그런 사람들과는 헤어진 후에도 잘 돌아보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상대가 신경 쓰이고, 걱정되고 소소한 것들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사람들은 가끔씩 뭘 하고 사는지가 궁금해지고는 한다. 

결혼은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그 가정은 내부적인 요인의 영향도 받지만, 외부에 의해서 흔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때로는 헤어지는 것이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 흔들림이 매우 작은 것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그런 '신경 쓰임'이 있다면, 상호 간의 그 '신경 쓰임'은 두 사람을 붙들어 주지 않을까? 굵은 끈으로 뭔가를 두세 번 묶는 것보다 약한 실로 수십, 수백 번 감는 게 훨씬 단단하듯. 겉으로 드러나는 '큰 것'들보다, 그런 작은 감정들이 쌓인 관계가 가정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 드는 건 왜일까? 

그거 하나면 다 된다는 건 아니다. 그거 없이는 안되지 않겠냐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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