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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결혼

이혼에 대한 생각

내 지인이 처음 이혼을 한 것은 그 친구가 20대 후반, 내가 30대 초반일 때였다. 오랜만에 약속을 잡고, 우연히 그 친구 웨딩촬영 현장 같은 사진을 다른 지인의 SNS에서 보고 '결혼했니?'라고 물어보자 돌아오는 대답은 '이혼했는데?'였다. 가볍게 만나려던 자리는 진지해졌고, 술이 들어가자 그 친구는 회사 사람들에게 말을 못했다며 잠도 잘 오지 않아서 회사에 먼저 나가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겠는 성경을 무작정 읽는다고 했다. 교회에는 다닌 적이 전혀 없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처음이었지만 마지막은 아니었다.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이혼 소식들의 사유도 다양했다. 이혼이 좋은 소식은 아니다 보니 구체적인 얘기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단편적으로 들려오는 이혼의 이유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으로 자라난 내게 예상보다 자주 들려오는 이혼 소식들은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이혼을 하면 안 된다고, 하나님이 맺어주신 짝이라고 믿고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온 내가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너무 멀쩡하고 괜찮은 그들이 다 이상하고 죄인이란 말인가?

어떤 이들은 담담하게 직접 소식을 알려왔고, 그보다 더 많은 경우에는 지인들을 통해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자세한 얘기를 들었던 몇 번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신은 과연 이렇게 힘들게 가정을 꾸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라는 생각과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들었던 이혼에 대한 결정들은 단 하나도 '쉽게' 내린 것이 없었다. 그리고 참으라고, 버티다 보면 서로 맞춰진다는 말은 거짓말인듯했고, 어떤 경우에는 설사 20-30년이 지난 이후에 상대가 바뀐다한들 그 과정에서 상대가 받을 고통을 무조건 감내하라는 것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주신 계명일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했고, 그에 대한 내용을 맥락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결론은 물리적으로 이혼을 하는지 여부가 내가 믿는 종교 내에서는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마음이 중요하지.

그 내용은 그렇다고 치고, 이혼한 지인들이 하는 말들 중에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그들이 모두 '실패'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었다. 그랬을 것이다.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가기 전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겠나? 더군다나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함께 내려야 할 결정들이 얼마나 많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얼마나 싸우나? 그런 과정 속에서 '정말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수회에서 많으면 수백 회도 더 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 가정을 꾸린 후, 기간이 얼마가 되었든지 간에 이혼을 하고 나면 본인은 그것이 실패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이혼하는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면 항상 그것을 실패로 여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을 뿐이고, 두 사람 모두 혹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누군가와 맞춰가며 함께 가정을 꾸려나갈 만큼 준비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결혼에 대해 했던 선택은 '실수'일 수는 있어도 '실패'는 아니다. 무엇인가가 '실패'라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결론이 나와야 하는 것인데,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잘 살아낼 수 있게 된다면 이혼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정조를 중요시하는 유교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면이 여전히 이혼한 사람, 특히 이혼한 여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회적인 평가와 주관적인 가치를 모두 배제하고 생각해 보자. 물론, 두 사람이 함께 살았다는 면에서 연애 후 이별하는 것과 이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어떤 이들은 '그게 얼마나 큰 차이인데?'라고 할지 모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함께 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가? 우리나라와 같이 여전히 가정보다 일을 우선순위에 놓도록 요구하는 직장이 많은 사회에서는 사실 연인과 부부의 차이는 함께 잠들고 일어나고 주말을 조금 더 같이 보낸다는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다. 혼전순결이 절대적으로 지켜지는 사회라면 그 차이가 조금 더 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사회에선 남녀를 불문하고 글쎄...

우리는 무조건 이혼을 배타시 할 것이 아니라 이혼하는 것이 왜 금기시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성경에서 이혼을 금기시하는 배경에는 '자신의 이익과 욕구를 위해서 상대를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즉, 성경이 다루는 시대에 이혼을 하는 것은 강자가 자신의 이익과 욕구에 따라 약자를 버리는 행위에 해당했고, 성경이 이혼을 금지한 것은 그러한 '마음'으로 사람을 취급하는 것이었지 이혼 그 자체는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그 당시에는 사회문화적으로 그러한 이혼이 아닌 다른 이혼은 상상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는 유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칠거지악' 중에 '자녀가 없는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사유들은 당시 문화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남자가 아내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자녀가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당시 판단 기준 등을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단순히 1-2년 안에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이 그 사유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기준으로는 그게 말도 안 되는 사유이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사회문화적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그나마도 이렇게 이혼이 까다로운 것은 남자가 확실한 우위에 있는 양반들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평민들은 합의이혼도 가능했고 이혼한 여성들도 재혼을 했다고 하니 그 당시에도 이혼 자체가 엄청난 흠이 되는 것은 아니었을 수 있을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이혼한 사람,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시선이 가혹한 것은 유교문화에서 정하고 있는 원칙과 성경에서 정하고 있는 율법이 언제, 어떻게, 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고, 그 내용이 남성 중심적으로 왜곡되어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성경이 쓰여진 시대, 그리고 조선시대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적용되던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나?

물론, 그렇다고 이혼을 장려해야 한다거나 쉽게 해도 된단 것은 아니다. 결혼에 대한 결정은 신중해야 하고, 두 사람은 서로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그 아이에게 미칠 영향이 있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혼을 한 지인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은 못하지만 몇 년을 심리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혼을 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정신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결정을 쉽게 내려서는 안된다.

하지만 정말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는 것이 혼자인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게 분명하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헤어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법률은 '유책주의'를 선택해서 이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혼을 주장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그 또한 무슨 짓인가 싶다. 이미 파탄 난 게 분명한 가정은 갈라설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고 위자료 등에 있어서 책임이 있는 자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것이 맞지 않을까?

길어야 100년 전후를 사는 인생이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지속적으로 희생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