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라디아서 2장 20절)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이다. 하나님이, 신이, 절대자가 이 세상을 만드셨고,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든 세상의 원리에서 벗어났으며, 그 원리를 이 땅에서 회복시키고 구현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목표여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창조에서 벗어나 사는 성경에서 말하는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또 그 전에 하나님에 대해, 세상의 원리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제자들은 그 가르침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 아니라 그 복음을,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고 다녔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 그가 살아낸대로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게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어떤 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으셨고 가장 낮은 자들, 상처받고 힘든 자들과 함께 하셨다. 낮다는 것, 상처받았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인지가 기준은 아니다. 돈이 많고 잘 살아도 상처받은 자,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사는 아들이라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찾아가셨다.
성경은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주셨다고 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셨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롤모델이 되셨고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으며,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성삼위일체론이 완전히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왜 그렇게 나뉘어야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성삼위일체론을 둘러싼 여러 학설이 있는데, 그게 더 혼란스럽게 하는 면도 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님을 믿을 때 받아들여지고 믿어져야 할 영역이지 따지고 들어서 이해할 영역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기독교인은, 그렇게 예수님을 항상 기억하고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땅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What, then, was the purpose of the law? It was added because of transgressions until the Seed to whom the promise referred had come. The law was put into effect through angels by a mediator......Is the law, therefore, opposed to the promises of God? Absolutely not! For if a law had been given that could impart life, then righteousness would certainly have come by the law......So the law was put in charge to lead us to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faith. (갈라디아서 3장 19, 21, 24절)
교회는 이것하지마라, 저것하지마라고 많이들 말하지만 '왜'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그 근거로 무조건 성경을 들이대는데, 그런 기준으로 하면 반박할 수 있는게 되게 많다. 이성과 합리성이 중요시되는, 아니 최소한 중요한 척이라도 하는 세상에서 그런 교회들의 자세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답은 이렇게, 성경에 나와 있는데도 이에 대해서 논란이 되는 것은 교회가, 목회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성경에서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니, 2천년전에 바울과 베드로가 한 논쟁을 지금도 한단 말인가? 그러면서 율법을 강요한단 말인가?
우리의 행위는 이 땅에 속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겉으로 하는 행위는 하나님 안에서 어떤 것을 하든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마음과 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행위를 최대한 가려서 할 필요는 있다. 이는 우리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위는 없지만 하지 않거나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나은 행위는 있단 것을 의미한다.
우린, 이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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