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we are taking pains to do what is right, not only in the eyes of the Lord but also in the eyes of men. (고린도후서 8장 21절)
한국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충성한다면서, 하나님만 바라본다면서 세상의 시선을 무시한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쫓는 것을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면에서는 세상을 무시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정답을 강요해야 한단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 것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구별되어야 하는데, 그 '다름'은 세상이 보기에 불편하긴 해도 맞는 것이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실행하기 힘든 일을 살아냄으로써 구분되어야지 세상을 배척함으로써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우린, 세상 속에서, 세상 한 가운데에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인이 세상과 부딪히는 것은 세상은 욕구와 욕망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데 반해,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내려놓으면서까지 사랑하기 때문이지 세상을 적대시해서가 아니다.
Each man should give what he has decided in his heart to give, not reluctantly or under compulsion, for God loves a cheerful giver. (고린도후서 9장 7절)
공동체란, 나의 것을 기꺼이 내놓는 것이다.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학부에선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난 정치와 법이 세상을 바꿀 수 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을 공부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법은 빈틈을, 해석가능성을 남겨놔야 한다. 그래야 현실의 문제들을 그 안에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빈틈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생길 것이다. 법으로, 제도로 사람을 바꾸겠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나이브한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어서 만들어진다. 우리 눈에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변화는, 내 것을 기꺼이 내놓으면서 시작된다. 제도로 사회주의를 강압하는 것은 변화를 가져올 수 없지만, 자발적으로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공동체는 변할 수 있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다만, 세상은 그것을 답이라 말하지 않기에,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그러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기에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변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신뢰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는, 기독교인은, 공동체로써 기꺼이 내어놓고 나누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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