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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업종 같은 거 모릅니다

'그래서 넌 뭘 하겠다는 건데?'

프리랜서 1년 차인 작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 질문이 정말 싫었다. 난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를 갓 받고, 몇 안 되는 박사학위자를 채용하는 공고에 넣을 때조차도 실적이 안되어서 채용이 안될 것을 알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학부 때는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학교에 나오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계속 이렇게 살았다간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될 듯했다.  

사람들은 '프리랜서'라고 하면 '000 하는 프리랜서'라고 상대가 답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프리랜서에게 외주를 줄 수 있는 업종에서 최소 5년, 보통은 아마 10년 이상 일한 사람들.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조금 가난해도 계속 한 업종을 파서 자신만의 포트폴리오가 생긴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을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두 부류의 프리랜서들의 공통점은 '힘들어도 한 길을 깊게 파고, 좋은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한 우물을 깊게 파지 않았느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다.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특히 내가 졸업한 학교의 경우 교수님들이 워낙 '학문 후속세대의 시대에 우리 학교가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강하게 하기 때문에 박사학위를 정말 까다롭게 주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 우물을 팠어도 그 우물이 시장경제질서의 밖에 위치해 있으면, 그 사람은 그렇게 판 우물을 갖고 프리랜서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박사학위도 그중에 하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위에서 '너는 뭐를 하고 있는 건데?'라고 물어보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답은 '일주고 돈 주면 다합니다'였다. 생존, 생계를 위해 일과 돈이 필요했다. 진정한 생존형 프리랜서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서 딜레마는 한 우물을 파서 프리랜서가 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과연 우리가 이걸 아웃 소싱할 정도, 또는 일을 돈을 주고 맡길 정도의 능력을 가졌는가?'가 문제 된단 것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전업 프리랜서로 살기 위해서는 나를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내게 주는 일거리와 그에 대한 보상의 총합이 내가 먹고살면서 잔고를 늘리는데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프리랜서로 지내다 잠시 회사로 들어갔던 것도 그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들어오는 일이 내가 혼자 먹고살면서 잔고가 늘어날 수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떠나온 이유가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와 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에 한 달을 고민하다 그 손을 잡았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만둔 이유는 있었더라. 그리고 마침 그때 일 몇 가지를 제안받아서, 그 제안을 들고 다시 회사를 나왔다. 들어간 지 한 달만에 결정했고, 두 달만에 나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회사를 나와서는 또 그 회사에서 일을 외주 받았다. 이게 뭐고, 나는 뭘 하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웠지만 그로 인해 일상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받은 일들의 성격도 다 달랐다. 드라마 보조작가, 교육과정 영문 editing, 회사 내부 시스템 및 브랜딩 진행, 정책연구과제.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일들을 번갈아가면서 하다 보니 머리도 아프고, 피곤하고 적응이 안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나 자신이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를 정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주위에서 내게 그것을 정의하길 요구하는데 내가 정의할 수가 없어서 힘이 들더라. 업종 같은 거, 모르는데. 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고 생계를 해결하는데 필요하다 싶으면 다 하는 건데.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프리랜서들 중에는 한 가지 일만 하면 일이 끊길 수 있고 수입이 급격하게 줄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이 가진 재능을 활용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있다. 한 사람이 번역사이자, 플로리스트이자 회계사로 살기도 하고, 그 외에도 프리랜서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 있다면 투잡이 아니라 n 잡러로 살 것이다. 일을 그렇게 다양한 곳에서 받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일을 1차적으로 12월 초에 마무리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그리고 단기, 중기, 장기의 계획과 목표도 세웠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 그림으로 엮이지 않는 내가 하는 일들을 죽기 전에 어떻게 하면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그림을 그려냈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나름 정리를 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특정 업종에 종사하는 프리랜서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일만 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난 아마 일단 받고 볼 것이다. 심지어 금전적인 보상이 충분하지 않아도 그 일을 하는 것이 새로운 영역으로 일거리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면 말이다. 물론, 그것이 불법적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는 선에서.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프리랜서들은 나와 비슷하게 본인이 할 수만 있다면, 본인에게 일을 주기만 한다면 업종을 가리지 않고 받을 것이다. 받지 못해서 못하는 것일 뿐. 

프리랜서는 그래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일이 들어올지 모르고 일을 못할 때를 대비해서 돈은 벌어놔야 하니까. 그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