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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작년에 비자발적으로 프리랜서가 되었다. 올해는 취업을 알아보지는 않기로 하면서 그나마 조금은 자발적으로 프리랜서로 남게 된 상황이다 (이 다짐도 언제 흔들릴지 모르지만). 그 다짐을 하는 과정에서는 당연히 계획을 세웠다. 죽을 때까지 만들어 놓고 싶은 것, 장기 계획, 중기 계획, 단기 계획. 요지는, 결국은 팀을 꾸리고 회사를 만드는 방향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그 일들은 내가 30대 후반인 지금까지 경험해 온 것들, 잘하는 것들, 내 무기가 된 것들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 계획을 세운 이유는 30대 후반까지 내가 건드려 보지 않았거나 하지 않은 것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0대 후반만 되더라도 인간은 대부분 [완전히 새로운]것을 하기가 힘들고, 그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큰 것이 현실이다. 취미로, 혹은 내가 해도 될 일이지를 스스로 확인해 보기 위해 사이드로 뭔가를 해볼 수는 있지만 풀타임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는 너무 리스크가 크다. 그리고 30대 후반까지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이라면 사실 그건 내가 관심이 없거나 내게 맞지 않아서 일 확률이 높은데, 그런 일들은 '업'으로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프리랜서로, 또는 사업으로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자신이 잘하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유망하다'는 이유로, '돈이 된다'는 이유로 시도해 보는 것은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기도 힘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절대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런 사업을 선택한 사람이 몇 년 안에 성공하더라도 10여 년 후에 그 사람의 그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그 때문이다. 

이렇게 그럴듯하게, 마치 내가 시작한 일을 꼭 성공해 낼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런 계획과 생각을 소수의 지인들과 공유할 때 항상 붙이는 단서가 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취업을 할 수도 있고, 그 계획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어'라는 말.

프리랜서로 살면서 내가 항상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내 계획과 생각이 그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설사 내 계획과 생각이 그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그 타임라인은 미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그 계획과 생각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리랜서로서 계획을 세울 때는 항상 버퍼를 두고, 그 계획이 그대로 흘러가지 않을 경우의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 한다. 

'나는 이런 계획을 세웠으니 이제 이렇게 갈 거고, 나만 열심히 하면 이뤄질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생각이다. 세상은 절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과 이익을 위한 결정을 하고, 그 결정들은 당연히 나의 성공과 이익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성공을 성공이라 하는가? 그건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을 그 사람이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갖고자 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가지려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가 그것을 갖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갖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과 경쟁 과정에서 더 늦게 갖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의 계획을 너무나도 쉽게,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VC에 있거나 사업을 하는 지인들이 내 계획을 들으면 '쉽지는 않겠지만 그림이 그려지긴 한다'라고 하지만, 그 계획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그건 단기, 중기, 장기, 초장기적인 계획은 있지만 '초단기'적인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내가 세운 계획과 하려는 일이 투자를 받고 사업화할 일도 아니기에 초단기적으로, 당장 내 생계를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프리랜서는 철저히 외부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계획은 세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내가 세운 계획의 결정적인 결함이다. 그리고 프리랜서들이 세운 계획은 그것이 실현될 때까지는 큰 의미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건 실현될 가능성보다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프리랜서들이 지금 당장 그 계획을 실현시켜 나가면서 현실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프리랜서들은 꽤나 자주, 자신의 계획과 무관한 일들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낮은 금액에도 생계를 위해 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계획을 끌고 나가야 한다.

그런데 프리랜서들은 자신의 계획에 반하는 일들을 생계를 위해 해야 할 상황에 처할 때도 있다는 데 있다. 프리랜서들은 그 순간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자신의 계획을 향해 끌고 나갈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현재를 살 것인지, 아니면 단기적인 생계를 위해서 일단 그 계획에 방해가 되는 일이라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선택에는 답이 없고, 누구도 어떤 선택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 이는 계획도 중요하지만, 현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