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묵상/말씀묵상-2021년

시편 101-119편 (시편을 읽으며)

작년에도 분명 교회 통독표를 따라 시편을 읽고 묵상했는데 올해만큼 감정적으로 힘들고 버겁진 않았었다. 그런데 올해는 왜 이렇게 가슴이 갑갑하고, 시편기자들의 마음에 몰입이 되는 것일까...

몇 주째 시편을 읽고 있는데, 말씀을 읽는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다. 그런데 오늘이 경 119편까지라 짜증이 난다. 이번주까지 시편을 읽어야 한다니... 그냥 빨리 넘기고 싶은데...

올해 전까지만 해도 사실 욥기가 가장 갑갑하고 읽기 고통스러운 성경부분이었다. 너무 몰입도 되고, 이해도 되고, 내가 변시를 보는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과 상황 같아서. 주위에서는 계속 뭔가 내가 잘못했을 것이라고, 실수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난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망스러운데 누구도 그 마음에 동의는 커녕 이해해주지도 않았어서, 욥의 마음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감정들이 떠올라서 힘들었었다.

그런데.... 욥기보다 시편이 더 힘들다. 사람들은 시편에서 아름답고, 좋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분들을 편집해서 묵상하고 암송하기를 즐겨하는거 같은데... 이게 정말 쭉... 흐름 속에서 읽다보니... 그런 부분도 정말 모든게 잘 되고 완벽해서가 아니라, 너무 힘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기 위해서 그렇게 외치는, 울부짖는 듯한 부분들이 많아서, 마치 마음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데 믿기 위해 울부짖는 듯한 부분들이 적지 않아서, 또 그런데 그런 부분들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 제발 모습을 보여달라고, 내 원수들을 물리치고 나를 수렁에서 꺼내달라고 외치는 내용이 많아서,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진도(?)를 나가기가 너무 힘들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이 반복되다보니 묵상하기도, 묵상한 내용을 블로그에 정리하기도 버겁다.

그리스도인. 이란 이름으로 사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고, 왜 내가 하나님을 일찍 알고 믿게 하셨는지에 대한 원망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거의 일만사천오백팔십구번 째 든다.

도저히 다른 날처럼 부분, 부분 깊게 묵상하는 건 되지 않아서 며칠치분 묵상은 이렇게 대체하려한다. 

They did not destroy the peoples as the LORD had commanded them, but they mingled with the nations and adopted their customs. They worshiped their idols, which became a snare to them. They sacrificed their sons and their daughters to demons. (시편 106편 34-37절)

어디까지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할지에 대한 부분이 항상 가장 어렵다. 가정을 반드시 교회 다니는 사람과 꾸려야 할지도 어렵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 자체가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도 내가 하나님을 오롯이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내 자신에 대해 그 정도의 확신은 없다. 결국 모든 것은 내게 달려있는 문제다. 

세상은 타협하라고 하지만, 타협할 수 없는, 절대 타협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되는 것들이 세상에는 있다. 그런 것들까지 타협하면 본질이 망가지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다 타협할 수는 절대로, 절대로 없다.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또 전혀 유연하지 못하면 세상 속에 들어가 빛과 소금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세상 모든게, 대부분 것들이 그렇지만 결국은 균형의 문제다. 결국 모든 것은 어디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균형. 어려운 문제다. 

'말씀묵상 > 말씀묵상-202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36-140편 말씀 묵상  (0) 2021.07.02
시편 120-135편 말씀 묵상  (0) 2021.07.01
시편 86-100편 말씀 묵상  (0) 2021.06.23
시편 66편-85편 말씀 묵상  (0) 2021.06.20
시편 61-65편 말씀 묵상  (0) 2021.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