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

두려움의 신앙, 그 유아성에 대하여

우리 아버지의 신앙은, 두려움 대한 신앙이다. 아버지의 고등학교 학창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아버지께선 은사도 받으셨었고, 하나님과 매우 친밀하셨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두려워 제발 다시 가져가 달라고 기도하셨고, 하나님은 정말 놀랍게도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거둬가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아버지께선 하나님을 '안' 떠나시는게 아니라 '못' 떠나고 계신다. 아버지의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두려움의 하나님이다. 나도 나이가 어느 정도 지난 후에, 아버지께서 내가 본인 신앙을 판단한다고 말씀하시며 해주신 말씀이다.

아버지만 그런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신앙의 기반으로 갖고 살아간다. 요즘 시대만 그런 것도 아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사랑, 자유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비춰지는 면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질투와 억압하시는, 벌하시는 자로 오해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래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득, 거리에서 아이를 야단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나를 혼내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대부분 아이들이 자신에게 해가 가는 행동을 자신도 모르고 하려할 때 아이가 두려움을 갖고 그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만들려 한다. 그걸 먹으면 죽는다, 다친다는 그나마 정말 그 아이에게 해가 갈 수 있는 객관적인 얘기를 하는거니 괜찮다고 치겠지만 대부분 부모님은 사실 [너 그러면 혼난다]로 아이들을 위협하고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줌으로써 아이들이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만든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으로는 그렇게 혼내지 않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한계를 갖고 있고, 아이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게 힘들기 때문에, 막상 키워보면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아이들을 협박하고 두려움을 줘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이런 부분들이 이제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입장에서 함부로 얘기할 수 없고, 또 아이를 가지면 실험(?)해보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를 설득하고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게 불가능한지를 사실 직접 키우면서 실험해 보고 싶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보자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에 두려움을 심어놓으신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너 혼난다'라는 말로 두려움을 심어놓으신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아무리 얘기하고 설명해도 들어먹지를 않을테니까, 또 지멋대로(?) 행동할테니까 '너 그랬다간 죽는다'라고 하나님께서 협박하실 수밖에 없어서 그런 두려움을 우리 안에 심어놓으신 것일테다.

그런 맥락에서 또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도 케바케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세상적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두려운 마음은 분명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니겠지만, 성경적이지 않은, 비도덕적인 일을 하면 인생이 망가지고 하나님께서 벌하실까봐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 길을 가지 않게 막기 위해서.

그런데 그런 신앙은 사실 유아적인 신앙이다. 뭔가가 두려워서 믿고 그것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수동적이고 어린 신앙인가? 내가 다치기 싫어서, 혼날까 봐 뭔가를 안하는 신앙이라니... 우리가 성인에게 '너 그러면 혼난다!'라고 하진 않지 않나? 말을 정말 안 들어먹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형사처버은 하지만 겁박하지도 않고 또 겁박하는게 먹히지도 않는게 현실이다.

성숙한, 성인의 신앙은 두려움의 신앙이 아니라 그대를 갖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깨달아 알아 그 길로 향하는 '적극적인 신앙'이 아닐까. 내가 가야 할 길이 있고,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을 믿고 나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을 위해 이 땅에서 전진하는 신앙. 그게 진짜 성인의, 성숙한 신앙이 아닐까?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사탄이 주는 두려움은 그렇게 전진하는 것을 막는 두려움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이는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는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과 가치와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의 핵심은 그 부분에 있다. 세상과 다른 방향을 향해 달려가라는 것. 그래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나보다, 세상의 상식보다 하나님을 더 믿고 신뢰해야 하는데, 그런 수준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게 힘든 것이, 우리 대부분이 갖는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따르기 위해 몸부림 치는 이유는... 이 글이 이미 충분히 길어졌음으로 다음 글에서 나누기로 하겠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뭔가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이 아직 유아기, 잘해봤자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 듯하단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 시작한다면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믿고, 따를 대상이자 사랑과 자유를 허락하시는 분으로 여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