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소명, 사명 이런 류의 말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도 그런 말을 자주, 쉽게, 마구 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류의 표현을 굳이 쓴다면 '소명'이란 표현을 쓴다. 굳이, 굳이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머리로, 고지론적으로 뭔가를 추구하는게 아니라 마음이 가는 곳을 향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한국교회가 성도들을 가장 망치는 가장 큰 방법은, 성경에서 나오는 주요 인물. 모세, 야곱, 이삭, 요셉, 다윗 등과 같은 인물들을 놓고 '그들과 같이 비전, 사명, 소명을 갖고 살아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엄청난 비전, 소명, 사명을 갖고 살아가지 않도록 계획되는 것이 현실이다. 성경에서 이름 한 번 나오지 않는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경의 흐름을 조금만 더 들어다 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이름 없이 광야를 40년간 떠돈 무리 속에 1인으로 살다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들은 그들은 무시하고 시선을 이름이 나오는 사람들로 돌려서 그들과 자신들의 삶을 일치시킬 것을 강요한다.
성경에 이름이 나오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은 매우, 극히, 예외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사실 성경에서 그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그 사람과 같은 목표, 길을 가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적 갈등,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또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지를 봐야 한다. 그 '과정'을 보고 그들의 내면과 그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을 봐야지 그들이 나는 다윗, 아브라함, 요셉, 야곱, 다니엘과 같은 사람처럼 살거야! 라고 쫓을 대상이 될 사람들이 아니란 것이다. 굳이 그들이 모델이 된다고 한다면 그건 그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에서 모델이 되어야지 그들의 사회적 지위, 일 등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단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들은 그들의 자세, 과정, 그들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지위, 그들이 이룬 성과 등을 가리키면서 자신의 비전, 소명, 사명을 세우라고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성경에 예수님을 제외한 어느 누가 자신이 무엇을 하게 될 줄 알았나? 그들이 자신의 비전, 소명, 사명을 만들고 발표했나? 그걸 목표로 달렸나?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꾸역꾸역 하루, 하루를 살아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이루게 될 것인지를 몰랐다. 모세는 심지어 하나님께서 가라고 했는데 거부하기도 했다.
비전, 소명, 사명이란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 표현들 자체가 마치 내가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가야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 나온 인물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야만 하는 길을 알고 그 길을 개척해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목표를 달성하려 버둥거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았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대로 갔을 뿐이다. 그들이 막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겠단 비전을 갖고 전진한게 아니란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가라고 했을 때 머뭇거렸고, 거절했고, 가기 싫다고 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 앞에서 치워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비전, 소명, 사명이란 말은 자신의 욕구와 욕망과 목표를 하나님의 계획으로 포장시키게 만들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너의 비전, 소명, 사명을 말하라고, 쓰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 뜻과 자신의 욕구, 욕망과 목표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난 생각한다.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울은 스페인까지 본인이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로마에서 머무르게 하신 것에서도 이는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소명을 미리 알려주고 '여기로 가라'고 하시는 경우는 물론 없지 않다. 그런데 그건 내가 구해서, 내가 고민하고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고 길을 보여주시는데, 그런 길은 대부분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머뭇거리거나 망설이게 되는 길이다. 어떤 면으로든 쉽지 않은 길이니까.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의식 중에라도 계속 회피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나마도 그런 경우는 매우, 극히 드물다. 우리는 대부분이 그저 묵묵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열리는 길을 따라가며 사는 것이 소명이고 사명이다. 소명이나 사명은 내가 개척하는게 아니라 내게 주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 소명과 사명에 적합하게 만드셨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소명과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내 앞에 열리는 길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 묵상하고 들여다 봐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들은 목표를 세우라고 하고, 그걸 비전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좋은 대학에 가서 그것으로 해야 할 일이 있겠지만 그게 모든 사람의 소명이나 사명은 아님에도, 누군가는 정말 낮은 곳에, 선교지에 가야 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님에도, 아니 모든 사람이 그러면 안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람들의 인생에서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길을 정해 놓고 은근히 그 안에서 비전을 찾으라고 강요한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런 한국 교회의 문화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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