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두려움의 신앙은 유아적이고, 신앙이 성숙해지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유를 알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난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고 있는가? 음... 그러기 위해 항상 노력했고, 이제는 정말 본격적으로 그래야 하는 지점에 와 있다는 것 까지는 아는데, 내가 아직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내 자신에 대한 불신보다 작아서 노력을 충분히 하지는 못하고 출발선에서 발을 들였다 빼기를 반복하고 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신앙의 기반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란 것이다.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철이 없게도,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하나님께 대화하듯 기도하며, 따지고 심지어 육두문자를 쓰면서 욕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10초 후에 회개하고, 잘못했다고 하고... 그러면서 교회에서 율법적으로 금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계속 마음으로는 도전하면서도 선을 넘는 건 두려워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 신앙 중에 두려움에 영역은 그 정도였고, 지금은 그 부분들 마저도 자유롭게 해결되었다.
그런 내게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믿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는 것이 내게 진짜, 지속가능한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계정 친구이신 여러분께는, 비장하게 하나님을 믿으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난 내 행복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에 대해서 '니가 행복하려면 돈, 명예, 세상이 말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지! 기독교는 섬김이 핵심이야!'라고 반박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런 반박은 복음을, 하나님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난 사람이 돈, 명예, 세상이 말하는 가치로 인해 온전히 행복해 질 수 없단 것이 성경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우리 안에 엔돌핀을 돌게 해주긴 하겠지만 그게 지속가능하진 않단 것이다. 그런 것들은 마치 운동하기 전에 부스터를 먹고 운동을 하거나 일하기 전에 각성하기 위해 마시는 커피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지만 내 안에 행복의 체력을, 근육을 만들어주진 못한단 것이다.
나는 성경이 우리에게 '너가 진짜로 행복해지는 것은 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그대로 사는거야'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경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그렇게 산 사람들을 예시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새디스트인가? 우리가 고통스럽고 힘들게 사는 것을 즐거워하신다면 그건 하나님이 새드스트여야 하지 않나?
하나님은 새드스트가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힘듦은 사실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과 현실의 충돌에서 발생하는데, 여기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세상의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너희 안에 설계도는 그렇게 되어있지 않아'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건물이라고 생각해보자. 그 건물이 자신 안에 골조와 자재들을 잘 알겠나 아니면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한 사람들이 잘 알겠나? 당연히 후자일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후자의 말이 맞을 것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건 우리가 세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세상과 같은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도 판단하거나 벌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실수한 것들을 용서하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그러한 것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설계대로 돌이키는 과정이 [회개]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우리 안에 죄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원리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갈등은 우리 삶 속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성경은 그걸 보여주고,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면밀히 구분해야 하는데, 이는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일 수도 있고, 악한 영이 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놓으신 계획이, 행복의 DNA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찾고 따라가는게 삶의 목적이란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전쟁]일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 그건 하나님의 전쟁이지 나의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내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아 알고 그 길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 뿐이다.
그 계획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 맘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는 대부분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획일적인 성공의 기준에 노출되어있고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갈등은, 힘듦은, 하나님의 원망은 대부분 거기에서부터 나온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다를 확률이 높은데, 그 다름은 사실 우리를 뭔가를 이루도록, 목적론적으로 우리 삶을 이끌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살 때 행복하도록, 회로를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내 이성에는 반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고 믿는 길을 갔을 때 느껴지는 평안함과 자유함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점은 모든 사람들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놓으신게 다르니까.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콘, 선풍기가 다 다른 것처럼 우리는 다 다른 지점에서 행복과 자유함을 느낀다. 어떤 이들은 아프리카에 선교를 가서 그 사람들을 섬길 때, 어떤 사람들은 세상 한 가운데 들어가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세울 때,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일원으로 성도들을 섬길 때 행복과 자유함을 느낀다. 그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엔 크고 작은 일이란 있을 수 없다. 가정에서 주부로 아이를 양육하고 배우자를 서포트하는게 왜 작은 일인가? 한 영혼만 살릴 수 있어도 한 세상을 살리는 것인데? 세상은 숫자로 가치를 얘기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가치를 말해야 한다. 달란트 비유에서 달란트를 받은 종들이 왜 자신에게는 하나만 줬냐고, 아니면 두개만 줬냐고 따졌나? 그리고 그 주인이 적게 받은 자에게 왜 더 받은 자만큼 못 남겼냐고 따졌나? 그러지 않았다.
사람들은 미친듯이 세상이 말하는 물질, 권력, 명예를 쫓고 따르면서 그걸 가지면, 조금 더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류 역사를 보면 돈, 명예,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로 인해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그걸 어느 정도 이상 가졌다고 해서 만족하고 눌러앉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렇다면 그게 어떻게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성공이 될 수 있겠나?
우리 모두의 성공은 다 다른 모양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모양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고 계획하신 모양인지 아니면 그에 맞지 않는 이상한 형태를 하고 있는지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성공했을 수도 있고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인생에 함부로 감놔라, 배놔라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라고 말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런 조언은 보통 획일적인 기준을 갖고 판단하게 되어있으니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그 길을 가게 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꽤나 오랜 시간동안 길 앞에서 선뜻 발을 내딛고 있지 못하기도 하다. 이는 그 길을 가는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두려움은 사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믿음이 작기 때문에 생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보다 내 자신에 대한 불신과 나의 욕망이 크기 때문에 그러고 있게 되는 것이다. 내 생각이 여전히 크고, 내 안에 내가 여전히 많아서.
그 한계를, 선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나도 더 행복할 수 있다. 그걸 믿는 마음이 어느 정도 크냐가 그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다. 그런 기준에서 나는... 참 부족하고 부족하고 작디 작은 믿음 밖에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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