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 또래 또는 나보다 어린 지인들의 결혼 및 출산 소식에 예민하게 반응했었다. 뭔가 내가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도 있지만, 20대에는 항상 30살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기에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걸 나는 갖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은 갖는 것에 대한 질투심이 작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가 얼마나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좋은 배우자와 좋은 아버지로 준비되는게 먼저라고 생각하니 그런 질투심들도 사그라 들었다. 그리고 워낙 결혼이 늦어지면서 지인들이 대부분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또 적지 않은 이들이 아이까지 가지면서 그 부분에 대해 무덤덤해졌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미국에 사는, 재미교포인 사촌동생이, 나보다 10살 정도 어린 사촌 동생이 임신했단 소식을 단톡창에서 보고 마음이 이상하게 복잡했다. 질투심인가. 아기일 때의 모습까지 기억하는 사촌동생이 엄마가 된단 소식에 기분이 이상한건가. 나도 잘 모르겠더라.
그 순간의 그 감정이, 복잡미묘했던 감정이 뭔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식을 듣고 복잡해진 마음과 머리를 걸으면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꽤나 오랫동안 빠져있었던 슬럼프에서 빠져 나온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꽤나 오랫동안, 짧게 잡아도 수 개월, 길게 잡으면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까지 계속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주위에서 해야한다고 하는 건 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고, 내가 그걸 해봤자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왜 그렇게 논문 쓰고 하는데 힘과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 하는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서 방황 아닌 방황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했다. 주위에서 이래저래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의미가 있다고 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았다.
내가 죽고 나면 다 끝인데, 내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이 뭐가 있다고, 나 아니어도 하나님께서 하실텐데,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등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있어서,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회의론에 가까운 마음이 날 사로 잡아서,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그 일들을 해야 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어떻게 해야 할지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정말 당장 쳐내야 하는 일,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만 하면서 버티고 있었다.
예전에는 독기로,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차서 그런 일들을 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는 않는 나를 중심으로 한 마음으로 그런 일들을 했다보니 그런게 사라진 다음에는 무기력증 비슷한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게 되더라. 내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그걸 오롯이 100% 받아들이게 되니까 더더욱... 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글을 써야 할지 설득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좋은 말이지. 맞는 말이고. 그런데,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데 기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여할 수 있다하더라도 그건 길게 보면 인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 별것 아니다. 또 그런 목표를 갖고 뭔가를 하려들면, 어느 순간 나의 욕망과 욕구에 내가 잡아먹힐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30대 초중반까지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리고 내가 하는 걸 쓰시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데 쓰실 분은, 그런 길을 여실 분은 하나님이시지 내가 아니다. 그건 하나님의 전쟁이지 나의 전투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것을 유인으로 삼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거의 2년 반을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빠져서 지냈다. 그 사이에 잠시 유튜브 같은 것들을 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사실 내 욕구와 욕망에 휘둘려 한 것이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유튜브를 다시 시작하는 것도 두렵기 시작했다. 내 욕구와 욕망이 나를 잡아먹고 있었단 것을 깨닫고 나니까...
그런데 사촌동생의 임신 소식을 듣고 나서 문득, 갑자기. 내가 지금처럼 살면 내 아이에게 어떤 아버지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지난 2-3주간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가정에 대한 소망함이 이렇게 크다면, 내 배우자가 될 사람, 그리고 혹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나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경제적으로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쌓는 일들을, 당장 돈이 안되고 당장에 상관 없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난 단 한번도, 금전적인 부분이 아니라 내가 지금처럼 살고, 어쩌다 결혼을 해서, 어쩌다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에게 난 어떤 아버지일지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확장되면서 '이게 태초부터 날 향한 계획을 갖고 계셨던,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날 위해, 내가 태어나서 살아갈 영역을 준비해주셨던 하나님의 마음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언젠가부터 그냥 결혼한 사람들은 그렇게 부럽지 않았다. 연애하는 것과 비교하면 좋은 것도 많겠지만 귀찮고 힘든 것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아이까지 가진 사람들은 꽤나 많이 부러웠다.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신앙적인 측면에서는 부모가 되어 아이를 위해 내 자신을 다 희생하는, 헌신하는 것은, 그렇게 사랑을 쏟아붓는 경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셨을 때 하나님의 마음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가진 사람들만 부러워했었다.
그 부러움이 여전히 없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줄어들었다. 아이는 커녕 배우자도, 배우자는 커녕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도 없지만, 지금부터,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서, 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그 아이가 사랑받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내게 주어진 것, 내가 보게 하시는 것들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언젠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실 그 아이를 위해 지금부터 할 수 있다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내 환경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다. 그런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해도 결혼하지 못할 수도 있단 것을. 그리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도 어떤 이유로든 아이를 갖게 되지 못할 수도 있단 것도 안다. 그게 현실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설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내게 생기는 소망함이 열매로 맺어지지 않을지라도 그런 기대와 소망함을 갖고 살면, 그 과정 자체가 내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이제 내게 주어진 것들을 빨리, 열심히, 잘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서로의 편이 되어줄 가장 친하고 좋은 친구인 배우자와 내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며 사랑하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사랑을 더 잘 알아가게 해줄 아이까지 허락하시면 더 좋겠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에 대한 소망함을 갖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며 내게 주어진 것들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길게 써놓고 다시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왠지 그렇지 않을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감사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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