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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묵상-2021년

예레미야 51-52장 / 예레미야 애가 1-5 말씀 묵상

The LORD is good to those who wait for him, to the soul that seeks him. It is good that one should wait quietly for the salvation of the LORD. It is good for one to bear the yoke in youth, to sit alone in silence when the Lord has imposed it, to put one's mouth to the dust (there may yet be hope), to give one's cheek to the smiter, and be filled with insults. For the Lord will not reject forever. Although he causes grief, he will have compassion according to the abundance of his steadfast love; for he does not willingly afflict or grieve anyone.  (예레미야 애가 3장 25-33절)

예레미야와 예레미야 애가에 나오는 하나님은 겉으로만 보면 신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어떻게 이렇게 동정심도 없고 애정도 없고 이렇게 폭력적인가 싶을 수 있다. 실제로 성경을 제대로, 많이 읽은 사람들 중에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이런 부분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묵상하는 글에서 늘 쓰는 말이지만, 우린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환경을 상상하고 이해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BC에 살았던 사람이다 (다만, 예레미야 애가는 예레미야가 직접 쓴게 아니라는 학설이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다. 시편은 다윗, 잠언은 솔로몬이 쓴 것처럼 기록된 것 역시 그 시대에 전달되는 글들에 잘 알려진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게 문화여서 그런 것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게 제시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예레미야 애가도 그 시대에 대한 글이란 것이다.). 그 당시엔 누구나 기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구전되었을 것이며 지금과 같은 성경도, 예수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이다이로 붙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하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쾌락과 자신만의 유익을 찾고 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이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강하고,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방법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은 꽤나 자주 폭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린 하나님의 폭력성 얘기를 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하나님의 말을 안 듣고 지멋대로 행동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와중에, 그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이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고백했는지를 유심히 봐야 한다. 하나님은 좋으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그냥 벌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예레미야애가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린 이걸 기억해야 한다. 

또...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은... 과연 지금, 오늘날 우리가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나은지에 대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도 없었고 구전되는 조상들의 이야기만 있었다. 그런데 우린 성경도 있고 무엇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경도 곡해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 

누가, 더 나쁜 놈이고 잘못하고 있을까? 그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