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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투박하지만 은혜가 되는

우리 교회는 좀. 독특하다. 목사님께서 매년 예배 드리는 법을 실험하셨다. 하긴, 사역이 아예 없고 성경통독반만 있으며 청년부도 없는 구조도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구조니, 뭐 예배 드리는 법이 독특한 건 독특한 축에도 끼지 못하겠구나. ㅎ

실험은 3년 전부터 시작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4년 전이었나. 매달 마지막 주는 전체 예배, 한국 교회에서 보통 '대예배'라고 부르는, 예배의 크고 작음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 표현을 쓰지 않는 난 '주일 낮 예배'라고 부르는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다른 교회의 구역, 셀, 소그룹 모임과 같은 단위가 우리 교회는 '통독반'으로 있는데, 이 통독반들은 그룹으로 묶여 있었고, 마지막 주는 그 그룹이 자체적으로 예배를 드렸다. 

2년 전에는 조금 더 과격한(?) 실험을 하셨다. 반대로 월 1회만 전체 예배를 오프라인으로 드리고 나머지 3-4주는 아예 그룹도 아니고 통독반 안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셨다. 물론, 설교본문과 영상은 제공되어서 설교는 통독반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 경험이 사실 코로나가 닥친 후에 각자의 처소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데 곧바로 적응할 수 있게 해줬던 기억이 있다. 

작년과 올해는 방역지침에 맞춰, 또는 지침보다 더 보수적으로 온오프라인 예배를 오가다가 목사님께서 다시 온라인 예배 조차도 2주에 1회만 하는 방향으로 하자고 하셨다. 뭐. 이 교회 5년차의 입장에선 이젠 놀랍지도 않다. 오늘 처음으로 그렇게 통독반 단위로 예배를 드렸다. 줌에서.  

그런데 2년 전에 월 1회만 전체 예배를 드릴 때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지만... 이런 식으로 소규모 예배를 드릴 때면 난 오히려 예배에 더 몰입하고 그 본질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엄청 불편하고 힘들고, 어색하지 않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들이 참 힘들었었다 적응도 안되고. 

하지만 계속 그렇게 드리다 보니, 그렇게 드리는 예배의 소중함과 의미를 알겠더라. 공동체가 되어간다는 건 피곤하고 힘들고 때로는 귀찮으며 심하면 서로 엄청나게 부딪히기도 하는 일이지만, 왜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오늘 드린 예배는, 2년여 전에 처음 통독반 단위로 드린 예배보다 더 어색했다. 내가 2년 넘게 함께 하던 통독반에 변화가 있어서 새로 배정받은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온라인으로 줌에서 드리는 예배는 정말 적응이 쉽지는 않더라. 

그런데 그 투박함 속에,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심지어 인터넷 연결 때문에 서로 버퍼링이 일어나는 와중에 드리는 예배 속에 엄청난 은혜가 있었다. 

사실 잘 준비된 세련된 예배에서는... 그냥 앉아서 예배를 잘 드리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예배를 드리니 더 집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더라. 고민하고. 그 노력과 고민이 놀랍게도 작지 않은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해줬다. 형식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 물론 좋다. 그런데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해 기독교인으로 살기로 결단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과연 편안하고 안락한 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 어떤 맥락에서 좋은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불편한 것이, 편하지 않은 것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더 정확하게 보게 해준다. 불편함 속에서 몸부림칠 때 우리는 더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되기도 한다. 

미친 소리 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래서 이 시간이 감사하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 시간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