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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단편적인 생각들

남자들에게 군대란

SNS를 켰는데 3, 4개 포스팅이 연달아 이 드라마였다.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차마 보지 못하고 있던 드라마. 주위에서 워낙 많이 보는 것 같아서 한 번 볼까 싶어 1부를 잠시 틀었다가, 심지어 집중해서 볼 생각도 없이 운동할 때 화이트 노이즈처럼 틀고 귀로만 들었다가 10분 정도 후에 꺼야했던 드라마. 그 드라마를 보고 SNS에 사진이 연달아 올라오는 내용 때문에 그 10분간 받았던 스트레스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직생활이 유독 더 안 맞는 스타일이긴 하다. 회사생활도, 심지어 한국에서 꽤나 기업문화가 괜찮은 편이고 외국계에서도 당시에는 문화가 굉장히 괜찮은 편인 회사에서도 힘들어 했으니까. 많이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편이라 원래 조직생활을 체질에 잘 안 맞는 편이긴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남자들 중에서도 유독 더 군대에 대한 기억이 악몽처럼 남아있는 편일 것이다. 

사실 그래서, 제대한 지가 조금 있으면 무려 17년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군대와 연관되어 있는 콘텐츠는 어지간하면 보지 않는다. 강철부대는 그나마 안보다가 주위에서 하도 난리길래 한 번 본 다음에는 군대 느낌보단 대결 느낌이어서 계속 보게 됐지만, 가짜사나이의 경우 출연자들 논란이 벌어지기 전에 1부도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 그 강압적인 분위기에 군생활할 때의 기억들이, 무려 16년도 더 지난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꺼야 했다. 

그래서 그런 군대와 접점이 있는 콘텐츠를 보는 남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보고 나서 당시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고, 그래서 짜증나고 힘들었다고 하면서도 그런 콘텐츠들을 보는 남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전방에서 군복무를 한 줄 알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난 서울 시내에 있는 사령부급 부대에서, 대부분 병사들이 인서울 중상위권 이상의 대학에 재학중이거나 졸업한, 유학파들도 많았던 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군생활이 마냥 편하고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연 그랬을까. 

다른 군부대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당했던 가혹행위는 이렇다. 우리 부대는 내무반을 일정 계급을 기준으로 자체적인 계급을 또 부여했고 그 안에서 가자 낮은 단계에 속한 이들은 매일,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매일 집합을 당했고 평균 주 1-2회 이상은 온몸에 땀이 날 정도의 가혹행위를 당했다. 머리 박고, 깎지 끼고 박고, 다리는 침상 위에 놓은 상태로 또 박고... 조금이라도 사고를 치거나 위에서 말이 나오면 지하실로 가서 똑같은 걸 당했고,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지면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전화로 갈굼을 당했다. 내 최악의 기억은 어머니께서 면회 오시기 직전까지 날 싫어했던 병장이 내무반 모든 인원을 내보내고 본인은 TV 앞에서 오락을 하면서 그 바로 옆에 내 머리를 박혀 놓으면서 내게 쌍욕을 했던 기억이다. 면회 오신 어머니 앞에서 울음이 터질뻔한 것을 누르고, 눌러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원형탈모증이 생겼다. 본래는 군대 의무실로 가야 하는데, 내가 원형탈모증인게 걸리면 부대가 뒤집힐 게 뻔하니 선임들은 내가 일과시간에 나가서 일반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했다. 그때 머리에 주사를 맞았던 영향으로 지금까지도 내 머리의 한 부분에만 흰 머리가 난다. 16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는, 내가 후임들에게 가혹행위까지 한 적은 없지만 나도 시스템의 일부였고 생존해야 했기에 바로 아래 후임들을 엄청 갈궜고, 또 내가 짬이 차서 시스템을 바꿀 생각은 있지만 일단은 현재에서 생존해야 한단 생각에, 내 짬에서는 이걸 바꿀 수 없단 생각에 그 지옥 같은 체제를 참고 버텨냈단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게 '너는 책임에서 자유롭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억울하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내가 부서지고, 박살났을텐데, 아니 그렇게 했어도 부서지고 박살났는데, 사무실에서 막사로 복귀하는 길은 갑갑하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느껴졌는데, 그렇다면 내가 죽어가면서까지 버텼어야 하는 것일까. 

D.P를 보기 위한 노력은 다시 하겠지만, 6부까지 볼 자신은 없다. 제대한 지는 17년, 상병 때부터는 삶이 조금은 편해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런 생활을  지는 17년도  지났는데도 아직까지도 1년 정도 지옥에서 살았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여기에 내가 직접 당하지 않았지만 옆에서  얘기들은 훨씬 많다. 남자가 남자를 성추행 하는 사례도 군대에서 처음 봤고, 나보다 선임들에게  심하게 당한 동기나 선후임들도 많았다. 

군대에서는  그렇게 되냐고? 사람들이 이상해서 그렇다고? 아니다.  군대 선후임들은  멀쩡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내게 가혹행위를 했던 선임들 중에서도 다시 만나면 가만히 두고 싶지 않은 인간들도 있지만,  중에는  번쯤 만나고 싶은 선임들도 있다.  안에서의 시스템상 그들이 내게 그럴 수밖에 없단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군대에 가서 그렇게 되는 것은, 멀쩡한 사람들도  안에서만큼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가장  이유는 군대에  있는 남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내가 피해를 보고 있고, 인생을 낭비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는 의식이 기본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계급사회라면 그런 의식이 생기지 않겠지만, 개인을 중시하고 국가가 개인에게 최소한의 지원만 하는 사회에서 군대에 강제로  것을 요구받는 것은, 그런 책임과 의무는 지우면서 아무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예전에 브런치에서 연재를 했다가 지금은 블로그로 옮겨놓은 시리즈에서도 밝혔던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남녀 간의 불평등과 여혐의 시작은 사실 군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페미니스트들이 남녀평등을 외치며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한다면, 남자들은 대부분이  사람의 편에  것이고,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남자들, 특히 젊은 남자들이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이면에는 사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군대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는 내면에 있는 영향이 작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자들도 똑같이 지옥을 경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거냐고? 아니다. 위에서 설명했지만 남자들이 군대 안에서 더 공격적이 되는 것은 자신들이 남자라는 이유로 피해를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가 정말 평등하게 국가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게 되면 군대 안에서도 그 공격성은 어느 정도는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남녀가 공존하는 공간에서는 남녀 모두가 공격성이 사그라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남자 중고등학교, 여자 중고등학교와 남녀공학의 학교 분위기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가 모두 같은 공간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면 군대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혹행위 들 중 상당부분은 최소한 지금보다는 줄어들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의무복무를 한다고 해서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기본적으로 군대 안에 여자가 많아지면, 여성 자체에 대한 폭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여자 직원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윗사람들이 많은 경우 울며겨자먹기로 문화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얼마전 뉴스에 나온 여자장교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줄 여자 동료가 있었어도 군대 안에서 성적으로 유린당하고 불이익을 받으며 각종 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때문이라도 군복무는 남녀가 모두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