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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단편적인 생각들

젊어서 힘들었음에 감사하는 이유

업계에서 굉장히 잘 나가던 분이 계셨다. 과거형은 아닌 게 그분은 여전히 그 업계에서 활발히 일하고 계신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의 변화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계신 그분이 그 힘듬을 감당하기가 버거워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을 봤다. 실망스럽진 않았다. 그분의 상황과 마음이 이해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단편적인 모습이 그분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그분의 그런 모습을 보며 그저 30대에 힘들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앉아있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린 사람들의 기준에선 나이가 들었고, 연배가 있으신 분들 관점에선 아직 젊은 애매한 나이가 되어 그 말을 떠올릴 때면 왜 그 말이 이렇게 오래 전해지는지가 이해되는 스스로의 모습이 꼰대 같아 싫지만, 그렇다고 또 이해가 되는 걸 안된다고 부정할 수는 없더라. 

그런데 꼰대들이 이해하는 것과 나의 이해는 조금 맥락이 다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르고 싶고, 달랐으면 한다. 이렇게 꼰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꼰대가 아닌가 싶다가도, 또 스스로가 꼰대가 아니란 확신은 없고 자기 성찰을 하는 걸 보면 꼰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니 스스로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꼰대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암튼 뭐, 그렇다. 

여튼. 그 말이 이해가 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 날에 고생하고, 실패하고 힘들었던 덕분에 내가 조금은 더 큰 사람이 되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꼰대들은 젊어서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 말을 하며 '네가 겪고 있는 건 별게 아니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니까 버텨'라고 말하지만, 아직은 그런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런 말을 하고 싶진 않다. 힘든 건 그냥 힘든 건데, 거기에 대고 '젊으니까 괜찮은 거야. 참아'라고 하는 건 대체 무슨 말인가. 그건 마치 사고 때문에 난 상처를 보면서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나을 테니까 아파하지 마'라고 하는 것과 같지 않나? 지금 아픈 건 그냥 아픈 거다. 아프면 약을 줘야지 거기에 왜 칼을 쑤셔 넣을까. 

나보다 어리고, 힘들어 좌절해 있는 사람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아픔에, 힘듬에 같이 공감해주고 들어주는 게 우선이 아닐까. 별 말은 안 할 것 같다. 들어주고, 들어주고, 들어줄 것 같다. 그러다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괜찮아질 때까지. 감정이 가라앉고 눈물이 그칠 때까지. 그리고 그렇게 말할 듯하다.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 그리고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의 이 아픔이 당신을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그러니 지금은 실컷 아파하라고. 아파해도 된다고. 아픈 게 당연한 거라고. 

상처가 하루아침에 낫지 않는 것처럼, 힘듬도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지금은 길어 보이는 그 시간이 지나가고 보면 그리 긴 것도 아니란 것도 안다. 내가 힘들고, 아파봤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잃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상대의 마음에 대한 이해.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안다. 그런 사람들은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의 폭이 굉장히 좁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나봤고, 내가 시궁창에서 뒹굴어 봤기 때문에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첫 실패가, 첫 힘듬이, 첫 좌절이 나이가 들어서 찾아올수록 그 후폭풍은 크다. 흔들리면 안 되는 상황에, 흔들리면 너무 많은 것을 잃는 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찾아온 불행은 그 사람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좌절을 감당할 근육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선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니,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실패해 보고, 힘들어 본 사람들은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갖고 있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망가지지만 않았다면 힘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공감할 줄 안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것은 우리의 삶을 꽤나 풍요롭게 해 준다는 것을, 터널의 가장 깊은 곳은 벗어난 요즘 꽤나 자주 느끼고 있다. 

오늘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말했다. 사회적 존재인 내게 30대의 실패들은 아프고 힘들지만, 인간으로서 내게 그 시간은 보물과 같은 시간이었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보다 나이가 적지 않게 많으신 그분이 자신의 인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오롯이 감당되지는 않는 삶의 무게에 무너지기 직전까지 가신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젊어서 실패해 봐서, 그 과정을 잘 버티고 지나와서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