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s says the Lord GOD: No foreigner, uncircumcised in heart and flesh, of all the foreigners who are among the people of Israel, shall enter my sanctuary. (에스겔 44장 9절)
하나님은 왜 이방인들은 멀리 하라고 하셨을까. 이방인들을 들이지 말라고 하셨을까. 사실 이 부분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신약에 가서는 이방인들을 들어올 수 있게 해주셨으니까.
그런데 이건 이 당시의 문화와 사회적 특징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엄청나게 세력이 강하거나 힘센 자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었다.
여기에서 '택한'에 대한 오해가 또 많다. 유대민족도 그렇고 한국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그렇고 [택한 자]라는 말에 본인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한국 교회들이, 한국에서 기독교가 비판을 받고 다른 사람들과 대립하게 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것은 더 잘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 되셨음을 그 사람을 통해서 보여주시겠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가 되라고 하신 것이지 우리가 더 잘났고 나머지는 못났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수구 구멍을 뚫을 때 다이아몬드를 사용하나? 아니다. 구멍을 뚫는 도구를 사용하고 그 도구는 항상 하수구를 뚫는데만 사용된다. 이처럼 우리가 택함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갖고 계신 계획이 있으시단 의미지 우리가 더 잘나고 못나고의 차이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택한 백성에 속하는데, 이제 본인이 그런 의미에서 택한 백성인지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있을 뿐이다. 그걸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게획에서 벗어나서, 본인 안에 있는 것을 그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자이고 그걸 아는 자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 땅에서 구현해 내는 자이다.
어쨌든, 이 시기에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강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을 성전에 들일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문화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그 후에 이 땅에서 하실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외부의 영향에서 보호하셔야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설명을 한다고 들을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하나님은 이렇게 강제하실 수밖에 없었다.
이방인들이 더 못나고 나쁘고 사악해서 그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계획을 이 땅에서 구현하시기 위해 그러셔야 했단 것이다.
이 외에도 에스겔의 오늘 묵상 부분에 나오는 뭐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 형식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과정에 핵심이 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가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 순종하는 훈련으로써 그 과정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돌 하나, 문 하나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아시기 때문에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하나, 하나 지침을 주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한번 하나님께서 왜 이 시대에는 이렇게 직접 말하고 일하셨으면서 오늘날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지를 궁금할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오늘날 하나님께서 저렇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시면 그걸 하나님의 말씀과 모습으로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설사 당사자가 그렇게 믿는다고 해도 그걸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고 믿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변화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간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소통하신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보다 우리의 삶과 이성과 합리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시는게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최소한 하나님께서 그 정도로 맞춤형으로 소통하실 것 정도는 알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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