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교회를 다닌 적, 있다. 어렸을 때 명성교회에 다녔고, 대학부 때도 온누리교회를 다녔다. 높은뜻 푸른교회도 그 두 교회보다는 작았지만 아주 작은 교회도 아니었고,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도 출석인원만 보면 그렇게 작은 교회는 아니다.
그런데 이 교회들은 운영되는 방식이 달랐다. 명성교회와 온누리교회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교회들이었다. 회사처럼. 이런 교회들의 장점은 효율적이고, 누군가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데 있다. 하지만 반대로 효율적이고 부담을 주지 않는단 것은 그만큼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인데, 그런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의 [교회]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 교회의 목사님들은 회사원들처럼 계급체계를 갖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지 성도들과 정말 공동체처럼 지내지는 않았다.
높은뜻 푸른교회는 조금 달랐다. 시스템이 없진 않았지만 규모가 작다보니 시스템보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고 서로 아는 느낌이 강했다. 시스템 자체로 뭔가를 돌리기엔 규모가 애매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안에서 거의 처음으로 [교회는 공동체]라는 것을 경험하고 느꼈다. 특히 찬양팀을 하면서, 찬양팀 사람들과 함께.
지금 내가 다니는 베이직교회는 더하다. 아무 시스템이 없다. 조직생활을 하셨던 목사님과 하시고 계시는 목사님이 계시니 시스템을 잘 만드실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교회는 시스템을 일부로 만들지 않는다. 코로나 전까지는 교회에 꾸준히 예배 드리고 통독반 모임만 하면 목사님들과 당연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통독반 모임을 주1회 갖고, 그것만 있다보니 그 안에서 서로 더 알아가게 된다. 다른 교회들이 소모임 그룹을 주기적으로 바꾸기도 하는 것과 달리 통독반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계속 이어지니 사람들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깊어진다. 우리 교회는 심지어 전체 예배도 매주 드리지 않는다. 설교문을 목사님께서 주시고 공동체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주차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통독반이 점점 공동체처럼 되어감을 느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간에 통독반들을 옮길 수밖에 없었는데 5년 넘게 다니며 3통독반에서 그런 경험을 했으니 내가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는 아닐 것이다.
교회는 무엇일까?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교회에 이것저것을 해야 하고 이러저러해야 하지만 왜 교회가 있어야 하는지, 교회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선 잘 설명해주지 않는다. [왜]에 대해서도. 그냥 십일조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해야 한다고 하고, 예배는 무조건 드려야 한다고 한다.
예배를 주기적으로 드려야 하는 건 맞다.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주기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적 원리를 잊어버리게 되어있기 때문에. 교회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맞다. 그런데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필요하다. 교회가 필요한 건 인간이 갖는 [한계] 때문이지 교회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교회와 공동체는 엄연히 말하면 수단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을 놓지 않기 위한 수단 말이다. 따라서 공동체는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붙들어줘야 한다. 그게 교회라는 공동체의 존재 이유고, 목회자는 그 중심에서 말씀에 집중하면서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다.
하지만 교회에 나간다고 해서 모든 게 다 되는 건 아니다. 우리의 문제를 공동체에서 해결해주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내가 이해하고 마음으로까지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는 모두 한계를 갖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완전히 품어주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도 나를 그러하기도 힘들다. 사실 [가정]이 필요한 것도, [교회]가 필요한 것도 그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함인데, 교회의 경우 [이해관계]로 엮여있지 않기 때문에 가정보다 그 유대나 연대는 필연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이해관계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교회 안에서 만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그런 이해관계를 교회 안에서 만드는 건 하나님을 매개로 연대성을 형성하는 것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게 물질적인 이해관계가 되면, 인간은 물질에 약하기 때문에 물질이 점점 그 관계를 잡아먹을 확률이 매우 높다.
어쨌든, 돌아오자면 우리 문제는 결국에는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나약하기 때문에 우리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런 부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기도와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아가면서, 그걸 바탕으로 내 상황을 보고 나갈 방향을 찾으면서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신앙은 감정적이기만 한게 아니라 이성의 영역도 굉장히 커야만 한다.
교회는, 우리가 그 지점까지 가거나 버틸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존재다. 그리고 인간은 공동체 없이 그 지점까지 갈수도, 거기에서 버틸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 성경 속의 인간관이다.
그런데 느슨한 연대만 형성되어 있는 대형교회는 그런 공동체적인 기능을 하기가 힘들다. 목회자 한 명이 수 백, 수 천명을 어떻게 다 알 수가 있나? 정말 말씀과 심방 등에만 집중한다면 수 십명에 대해서는 가능할 것이나 대형교회는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서 목회자들에게 행정적인 업무도 맡긴다. 그걸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 목회자는 일단 대형교회라는 회사 소속이다 보니 목회자들은 행정을 놓을 수는 없고, 그러다 보니 말씀과 성도들과 공동체됨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형교회가 무조건 나쁘다거나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인간의 특성과 본성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시스템이 들어왔을 때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대형교회는 성경적이지 않게 될 확률이 훨씬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사역이 아예 없다면 모르지만... 대형교회들은 보통 다른 사역이 얼마나 많은가?
소개팅을 했을 때 대형교회 다니는 분이 본인은 아무도 나를 모르고, 편한 대형교회가 좋다고 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공동체에서 불편함이, 부담이 없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함께 넘어가면서 더 가까워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이자 교회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걸 감당하게 되는 것은 공동체로 함께 함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과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가 좋고, 그 방향성에 십분 공감하기 때문에 교회를 옮길 생각은 당연히 없지만, 지금 다니는 교회 언젠가는 떠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큰 교회로 옮길 생각은 없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작은 공동체라고 해서 모두 성경적인 것은 아니지만, 정말 작은 공동체에 속하고 싶다. 지금 교회가 좋은 것도 사실은 여러 작은 공동체들의 집합체나 조합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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