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서 이 부분은 창세기가 단순히 개신교의 영역을 넘어서 왜 천주교는 물론이고 유대교의 basis가 되는 지를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역사는 중동지역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시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역사 그 자체다. 창세기의 이 부분에서 하나님은 하갈의 아들인 이스라엘에게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는 사실, 롯의 두 딸이 낳은 아들이 모압의 조상과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우리가 오늘날 '중동'으로 구분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자들의 사조가 되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유대교에서 기초를 두고 예수님을 기점으로 해서 갈라져 나왔다. 그렇다 보니 유대교와 기독교는 구약에서의 역사를 공유할 수밖에 없고, 이는 중동지역에서 형서된 종교들의 경우가 모두 그렇다. 따라서 이를 부인하고 그 내용을 기독교 또는 개신교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우매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동에서 형성된 종교들에게 창세기의 이 부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유대교, 중동, 이슬람인 사람들에게 이부분은 자신의 '뿌리'를 찾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남북한이 같은 '민족'임을 인지하듯이 사실 중동 사람들도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는 같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사실 이를 기점으로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민족'으로의 정체성은 그들 간의 동질성을 통해서 연대성을 형성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그 의도르 이 흔적을 창세기에 남겨 놓은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들은 이 부분을 자신들의 '다름'을 강조하는데 사용한다. 자신의 시조는 이스마엘이라고, 이삭이라고 말이다. 기독교인들도 여기에서 본인들을 이삭에서 예수로 이어지는 계보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 근거로 사용한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들은 모두 '형제'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이슬람에서 개신교, 유대교를 형제종교라고 보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뿌리를 같이 하고 있고, 같은 신을 믿지만 유대교는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이고 개신교는 예수님이,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들이니까.
그 믿음의 '다름'을 '하나님' 또는 절대자이신 신이 어떻게 판단하고 받아들일까? 인간의 한계와 죄성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예수가 정답이니 너희는 틀렸으니 지옥으로 가?'라고 하실까?그건 우리가 알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 솔직하고 정직하지 않을까?
다른 종교가 틀렸다고 비판하고 비난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수님이 왜 메시아이고 구원자이며 진리인지도 모르는 교회 다니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그것보다 알고, 깊이를 더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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