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에 대한 묵상이나 설교는 대부분 야곱이 총 14년을 참고 지냈다거나 야곱이 본인의 삼촌에게서 어떻게 재산을 가져왔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야곱이 보인 모습들은 좋게 말하면 굉장히 인간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얍삽하다고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들이다. 자신이 갖고 싶은 여자를 위해서 7년을 더 섬기고, 둘 중에 한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은 재산을 갖기 위해서 술수를 쓰는 사람이 야곱이었다.
성경에서 이 부분은 어쩌면 야곱이 얼마나 부족하고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뒤에 그가 변하는 모습과 연계해서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벧엘에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중심으로 사는 그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너희도 지금 나를 믿는다고 하지만 네 욕심으로만 살고 있지는 않니?'라고 물어보고 계신지도 모른다.
사실 이 부분을 보면 야곱은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다. 만약 그가 정말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었다면 라헬이 아니라 레아가 자신의 아내로 침실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하나님께 원망하고 분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을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삼촌에게 분노한다. 그가 만약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삼촌에게서 떠날 때 하나님께 어찌해야 할지를 물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취하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재산'을 취한다.
야곱이 이 시기에 '하나님'을 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 이 이후에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나 갈 때 라헬이 이방신의 우상을 숨겨 온 것에서도 드런난다. 즉, 이 시기의 야곱은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을 쫓고 이방신과 가까이 있던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은혜가 될 수 있다.그랬던 야곱도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시다가 때가 되니 그를 부르셨다. 자신의 욕심으로 가득 차고, 이방 풍습을 따르고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던 야곱도 하나님은 들어서 하나님의 계보를 만드는데 사용하셨고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나라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은 얼마나 깨닫고 느끼면서 살고 있을까? 야곱은 그나마 하나님을 모르고 아예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 이렇게 살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고 본인은 하나님을 믿고 성경에 따라 살겠다고 하면서 이 본문에서 야곱과 별반다를 바가 없거나 더 세상적인 삶을 산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기다리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삶이 바뀌어야 한단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본인이 마치 우월한 존재인 것처럼 여기고 가르치려 들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보듬으면서 이해하고 품어줘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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