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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창세기 34-36장 묵상

이전 말씀에서 유추 가능했던 것처럼 역시나 야곱의 집안에는 우상이 가득했고 그 자녀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지는 않았던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이는 야곱이 하나님께서 본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이후에도 완전히 하나님 앞에 구속된 삶을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디 야곱뿐이겠나? 오늘날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수많은 우상들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팔지만 그것은 껍데기일 뿐이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벌하시거나 책망하시지 않는다. 심지어 그 아들들이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며 다만 우상신들을 땅에 묻으라고 하신다. 야곱은 이에 순종하고 떠나간다.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두려움의 하나님, 벌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건 성경을 너무 편협하게 보고 일부만 들여다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벌하시기 전에는 수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를 하신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하나님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본인의 입장을 수정하시기도 한다.

무조건 다 받아주고 용서하고 괜찮다, 괜찮다 하는 것이 자비인가? 그건 아무 기준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준을 갖고 판단하고 평가하시면서 기회를 계속해서 주시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만 개입해서 벌을 주신다. 구약에서 그 패턴은 반복되며, 이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심지어 야곱을 호되게 혼내지도 않으신다. 그리고 본인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한 약속도 지키신다. 기준도 없이 무조건 다 용서하거나 한두번 선을 넘은 것을 이유로 계속 처벌하면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인간도 그러지 않는데 신이 그렇단 말인가?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신,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라고 이름 붙인 그 신을 너무 자주 오해한다. 나 같았으면 직접 본인들 손으로 복수를 한 야곱의 아들들을 벌했을 것이다. 내가 만든 피조물들을 어디 본인 손으로 죽인단 말인가...

하지만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고 믿고 용서하신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외식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비난을 하거나 손가락질을 하고 싶진 않다. 그들도 돌아올 수 있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하고 넘어가서도 안된다. 그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써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판해야 할 것은 비판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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