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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결혼

결혼, 대화, 그리고 속궁합

연애, 사랑, 결혼에 대한 글을 오래 써왔지만 스킨십과 관련된 얘기는 쓸 때마다 부끄럽고 민망했다. 보수적인 가정교육을 받고, 보수적인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외국인학교를 다니면서 어렸을 때부터 교육도 받고, 친구 집에 가서 실전용 도구(?)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 나아진(?) 편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어땠을지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친구가 어떤 걸 갖고 있었길래 그러냐고? 음... 그나마 밝힐 수 있는 건 중학교 친구가 방에서 콘돔을 색깔과 종류별로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가정교육과 성장환경이란 게 참 무서운 게 그런 환경에서도 난 철저히 보수적으로 살아왔다. 남자들 중 소위 말하는 '혼전순결'을 절대적인 가치로 붙들고 산 기간은 내가 상위 1%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보수적으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별의별 얘기를 다 들었고, 나 역시 남자다 보니 내 안에 끓는 욕구, 욕망, 감정과 극단적으로 보수적으로 교육받은 영향 사이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갈등하며 살아왔다. 그 틀을 깨고 내가 지금 스킨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이미 여러 글에서 밝혔으니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 궁금하신 분은 연애, 사랑, 결혼에 대한 내 브런치 북에서 관련 글을 찾아보시면 알 수 있다. 

연애에서의 스킨십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그 문제가 정리되었는데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여전히 있었다. 결혼 후의 스킨십, 그리고 속궁합. 내가 결혼을 해보지 않았으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내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어서 그에 대한 글은 쓴 적이 없다. 사실 스킨십이 내게는 굉장히 중요한 사랑의 언어 중 하나다 보니 이 부분을 얼마나, 어디까지 타협하며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더라. 아니, 섹스까지 갈 필요도 없이 사실 개인적으로는 스킨십도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색하고 힘들어만 했던 분들과는 연애가 쉽지 않았다 보니 어디까지, 얼마나 의식을 해야 할지가 고민되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스킨십의 아름다움을 알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단 것이다. 사실 사랑은 말과 행동으로도 전달되지만 서로의 몸을 통해 서로에게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소통 또는 대화이기 때문에 배우자와 스킨십 없이 평생을 살 자신은 없다.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경험해 봤기 때문에. 

하지만 그게 1순위냐, 속궁합부터 맞아야 결혼을 해야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답하겠다. 이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서로에게 진정한 신뢰가 생기고, 상대에게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 수 있으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스킨십도 자연스러워지고 서로 잘 표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속궁합을 얘기하면서 물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는데, 물론 그런 면들이 하는 역할과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실 스킨십과 섹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결과'에 있지 않고 그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느낌이 든다면 그 스킨십은 충분히 아름답고, 서로의 성적 욕구와 욕망도 충족시킬 수도 있다. 

물론, 물리적인 측면까지 갖춰진다면 더욱 완벽할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부분과 그러한 교감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더 중요한 건 당연히 교감적인 부분이다. 경험적으로 이렇게 말하면 남자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반발하면서 네가 정말 잘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반응들은 반대로 그런 정서적 교감을 바탕으로 한 스킨십과 섹스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대부분 스킨십과 섹스를 자신의 욕구와 욕정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사용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그렇다. 여자들이 '너만 좋으면 다냐?'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 건, 여자는 '이게 뭐지?' 싶은데 남자는 '좋았지?'라고 묻는 건 그 상대가 감정적 교감을 바탕으로 하는 스킨십이 아닌 호르몬 작용을 폭발시키는 스킨십을 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남자들은 본인이 그렇게 스킨십을 했을 때 여자들이 '좋았다'라고 답한다고 해서 그게 항상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남자와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남자들은 왜 그럴까? 남자들이 그런 것은 결국 남성호르몬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그런 느낌을 아는 사람들이 남자보다는 적은 듯한데, 남자들은 대부분이 남성호르몬이 폭발하면 경험이 적을수록 호르몬 작용을 통제하고, 조절하면서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호르몬 작용에 끌려가듯이 스킨십에 임하고 실제로 통제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그나마 '사회적 관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걸 조절할 줄 아는 사람도 상대가 허락했다고 느끼는 순간에 끈을 놓아버리면 남성호르몬이 남자를 조정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자들이 스킨십, 특히 섹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남자들의 본성이 본래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본인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남자들이 어떤 맥락에서,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게 조절도, 통제도 불가능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정말 그게 조절도, 통제도 불가능하다면 수영장이나 지하철처럼 사람들이 밀착되는 공간에서는 어떻게 통제와 조절이 된단 말인가? 만약 그게 정말 조절도, 통제도 불가능하다면 성범죄자들은 다 잘못이 없단 말인가? 

남자들의 성적 욕구, 욕망, 욕정이 대부분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강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게 조절도, 통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게 정말 조절도, 통제도 불가능하다면 본인의 평판과 지위가 문제가 될 때도 폭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걸 조절이나 통제하지 않는 사람들은 상대를 사람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덜하거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변하는 것이다. 성범죄자들이 처벌을, 그것도 강하게 받아야만 하는 것은 그들이 상대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고 존중하지 않고 상대의 몸을 성적 도구로 여겨 몸과 마음에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식은 모르는 사람뿐 아니라 연인이나 배우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내가 정말 상대를 사랑한다면, 상대의 마음과 의사와 상관없이 잠자리를 강요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악용해서 사랑한다면 스킨십을 해야 하고, 잠자리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사랑'이란 무엇인가? 다른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자신의 자녀를 사랑한다는 부모가 자녀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까지 학원 다니고 공부할 것을 강요하는 게 사랑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은 하고 싶지 않은 스킨십을 강요하는 게 사랑일 수 있나? '오빠 믿지?'라면서 강요 아닌듯한 강요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믿음은 경험과 신뢰가 쌓이면서 나오는 거지 그냥 믿는 게 아니다. 그 질문은 '나를 믿지 않는 네가 나쁜 거야'라는 전제를 깔아놓은 굉장히 폭력적인 표현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나오는 반론은 '몸이 가까워지면 마음도 가까워진다' 정도다.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몸이 가까워지면 서로의 몸을 탐하면서 느껴지는 자극이 워낙 크기 때문에 사실 두 사람은 실제로 마음이 가까워지기보다는 상대를 호르몬 작용을 일으키는 대상으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상호 간에 충분한 대화와 시간 없이 몸부터 가까워진 사람들은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건 관계에서 '속도'가 그렇게 중요한지 여부다. 두 사람이 빨리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것이 중요한가? 그것보다는 두 사람 사이에 신뢰와 믿음이 조금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자리 잡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두 사람이 모두 서로를 성적인 도구로 생각한다면 그건 다른 얘기겠지만 사랑을 얘기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속도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닌 듯하다. 이는 남은 미래를 통으로 결정하는 '결혼'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나는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고 위하는 마음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가까울수록 그 사랑이 더 커진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를 소중하게 여길수록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나를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는 신뢰가 생기면 스킨십이 어색하고 힘든 사람도 마음의 문을 열면서 스킨십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게 되어있다. 

물론, 그 시간을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쉽지는 않다. 특히 남자들은 더더욱.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실 나도 어렸을 때 그렇게 기다려주지 못해서 이별을 통보한 적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일정 시간 이상을 그렇게 기다려주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단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그 '일정 시간'은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을 듯하다. 상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이미 어느 정도 있는, 꽤나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마음의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지 않을까? 

결혼 얘기는 하지 않고 너무 스킨십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나갔는데... 이러한 패턴은 결혼생활에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평상시에 대화는 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스킨십만 하는 게 과연 사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