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비전>이란 표현은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길게, 인생의 목표가,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하는 질문들 중에 '비전을 말해라'라는 항목이 거의 빠지지 않는데 그건 결과론적으로 '너의 생각과 목표, 욕망을 적어라'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알 수 없다.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을 적어라(말해라)'라고 하는 것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은 나의 욕심과 욕망과 욕구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그게 좌절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왜 비전을 주시고 들어주지 않으시냐며 대든다.
그건 마치 누군가에게 1억을 주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그 사람이 '당신이 내게 1억을 준다며!'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얼마나 황당하실까?
비전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에 어떤 인물도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고 계획하고 준비해서 그곳에 가지 않았다. 다윗도, 다니엘도, 요셉도, 바울도, 베드로도. 바울은 심지어 스페인으로 넘어가고 싶었으나 로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들은 '비전'을 말하고, 구하고, 알라고 강요하는가? 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가?
한국교회에서 요구하는 '비전'과 '소명'을 명시적으로 대는 행위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욕심과 욕망과 욕구에 잡아먹히게 만든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지고 성경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든다.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은 한 치 앞도 모르고 내게 주어진 길을, 내 앞에 열린 문을 뚜벅뚜벅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그 과정에서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기독교인의 삶은 내가 갈 길을 미리 알고, 계획해서 준비 잘해서 사는 삶이 아니다. 그건 인본주의적이고, 세상이 말하는 자기개발적인 사고방식이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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