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항상 한 발 앞서 내 앞 길을 준비시키셨다. 특히 교회에서 섬기거나 하는 일들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랬다. 약아 빠지고 특별히 교회 일이나 사역에 열심이고 싶은 생각이 없는 나는 항상 '어쩌다 보니' 사역을 맡게되었었다.
가장 오래 했던 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 찬양팀 싱어도 그랬다. 여름에 모집공고를 보고 마음은 가는 데 머리는 아니라고 생각됐다. '로3 때는 공부만 해야 하는데 이 시점에 찬양팀 하는 건 아니지...'라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으로 지원을 안했더니 겨울에 공고가 다시 나더라. 그때도 기도를 하면 마음이 가는데, 머리로는 막았다. '아씨 몰라'라며 지원을 했다가 됐고, 여러 이유로 찬양팀 사람들은 내가 오래 섬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는데 나는 5년간 싱어로 예배의 자리에 섰다.
당시에는 말도 안되는, 이상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찬양팀과 함께였기에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예배의 자리에 서며 위로 받았고,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쳤으며, 찬양팀 형, 누나들이 공동체가 되어주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양반은 내가 겪게 될 일을 다 알았던 것 같애...'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산티아고 가는 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가게 되는 과정 때문이다. 첫 번째 시험을 마치고 시간이 많이 빌 때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온 친구와 밥을 먹었는데, 고민하다 '그래도 안될 것 같아. 그 사이에 괜찮은 사무실 자리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친구가 '그럼 그렇지, 너는 보수적이고 틀이 박혀서 안된다'라고 하더라.
욱해서 2주 후에 출국했다. 주택청약통장을 깨고 갔다. 모았던 돈은 로스쿨 학비와 생활비로 다 썼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도 미쳤다고 했고, 지금 돌아보면 나도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이해는 되지 않는데...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내가 평생 했던 모든 선택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 되었다. 까미노를 걸으며 했던 생각들은 나의 30대를 지탱해줬고, 힘들 때마다 위로가 되었으며, 지금도 내 안에 인간적인 욕망과 욕구가 솟구칠 때마다 '가방 하나 가지고도 행복했던 그때의 한달'을 떠올린다. '그 양반'은 다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내 30대가 어떨지를... 그 포섭이자 준비였던거지...
찬양팀을 내려놓고, 마지막 변시에 집중하기 위해 지금 다니는 교회에 온지도 만으로 5년이 되어간다. 그 이후 교회에서 어떤 사역도 하지 않았다. 우리 교회가 사역이 없기도 하고, 내 상황상 누군가를 섬기거나 할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있는 사역은 '통독반 섬김이'인데, 일종의 구역장이나 셀장 같은 개념이다. 심지어 섬김이를 주기적으로, 인위적으로 바꾸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두시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약간 불안감을 가지고 버티고 있었다. 내 발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이러저러해서 조금은 갑작스럽고 예상하지 못하게, 섬김이를 맡게 되었다. 어제 저녁 zoom으로 한 통독반 모임에서, 정말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며 발을 살짝 뒤로 뺀 상태로 있으면서도 뭔가 불안해졌었다. 마음에도 뭔가 이상하게 내 쪽으로 불똥이 튈 듯한 느낌이랄까... 기도하고, 고민하며 얘기를 듣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피식' 웃게 되더라. '아 이 양반 또 시작이네...' 싶어서...
교회 일을 하는데 욕심이 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공동체를 어떤 형태로든 섬기는 과정에서 입게 되는 은혜가 있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축복이 있다는 것을 몇 번의 교회 일들을 하면서 경험했다. 그랬기 때문에 두렵고, 걱정도 되고 기도도 하게 되지만 왠지 모를 설레임과 기대감도 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움직이기 시작하기 시작하셨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10년 간 가장 힘든 건 내 삶이 멈춰서, 고여있는 듯하단 것이었다. 마치 하나님이 '잠깐, 너 거기에 멈춰 있어 봐'라고 하시는 느낌이랄까? 나는 좀 앞으로 가고 싶은데, 내가 가려고 할 때마다 브레이크가 잡혔고, 좌절해 왔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하나님 일단 잠잠히 있을테니 하나님께서 내 삶을 움직여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어진 일들에만 최선을 다하고, 뭔가를 내 힘과 노력으로 이루기 위해 노력하거나 계획을 세우지는 않기 위해 노력했다. 결혼도, 일도, 사역도...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아직 열매는 없어서 나누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든 영역에 대해서 나도 변하고, 내 상황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조금 더 노력하고 애 쓰려고 할 때마다 브레이크를 잡고, 서두르지 말자고 마음과 몸을 다잡았다. 그러더니 대뜸... 언제 맡기실지 몰라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있던 섬김이를 맡기셨다.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한다. 하나님은 항상 내 인생의 변곡점에서,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할 때 교회 안에서의 일이나 자리를 맡기셨었다. 항상 그랬다. 온누리교회 바울 공동체에서 새가족 순장과 콰이어로 섬길 때도 내가 나선 게 아니라 뜬금 없이 콜링이 왔었고, 그 전에 어떤 형태로든 섬길 때도 내가 손 들고 하는 경우보다는 상황과 환경이 나를 그렇게 떠밀었었고, 그때마다 그 자리에서 부어지는 은혜와 더불어 내 인생의 상황적인 변화들도 동반되었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내 인생을 하나님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시는 듯해서. 그 양반은 내 앞에 놓은 것을 아시니... 이제 내 인생에서 뭔가를 움직이시려는가보다... 싶어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된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맡게 되었기에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머리도, 마음도 복잡하다. 기도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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