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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다섯 번의 변호사시험 중에 두 번은 정말 붙을 줄 알았고, 세 번은 그러지 못할 줄 알았다. 두 번째와 다섯 번째 시험은 붙을 줄 알았고, 나머지 시험들은 여러 이유로 준비가 제대로 되지 못한 상태였기에 무의식중에라도 떨어질 줄은 알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혹시나 기적적으로...'라고 생각했던 시험도 있다.
그 중에 두 번째 시험을 본 후에는 일주일을 무신론자로 지냈다.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이렇게 내 몸을 갈아 넣고 신경안정제를 한 달간 먹으면서 마음까지 갈아넣고 심지어 당시에 만나던 친구와 헤어지면서까지 무리해서 시험에 집중을 했는데 어떻게 이걸 내게 주지 않으실 수 있냐며, 신이 존재한다면 이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신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찬양팀에서 섬겼다 보니 예배는 갔다. 기도는 안되었지만 앉아는 있었고, 찬양은 나오지 않았다.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앉아 있는 내내 ㅈㄹ, ㅆㅂ 같은 비속어로 욕을 쏟아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예배 마지막 기도에서 '하나님, 난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아... 이게 무슨 ㅆㅂ 말도 안되는 짓이란 말인가. 하나님이 없다면 난 지금 누구에게 이 말을, 기도를 하고 있는가... 이 무슨 멍멍이 같은 소리인가...
그때 나는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한단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내가 하나님을 떠나고 믿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경험과 논리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걸 깨닫자마자 내가 가로막고 있던 불합격의 아픔이 몰려왔다. 너무 고통스러웠고,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시 다녔던 교회에는 대언기도를 해주시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찬양팀 목사님을 통해서 그 목사님께 기도를 받으러 갔고 '하나님께서 도대체 내게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다. 왜 내 인생엔 기적 같은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고 내가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안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목사님께서 내 손을 잡고 등을 두드려 주시면서 기도해주신 후에 하신 말씀은 '왜 물리적인 기적을, 너의 기준으로 기적을 원하냐? 너가 살아있는 것, 지금까지 지내온 것 자체가 하나님 안에 보호받으며 지낸 것이고 기적이다. 하나님은 잘 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너를 기뻐하신다고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펑펑 울었고, 그때는 마음이 조금 나아져서 자리를 떴다. 거기에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그때의 기억이 종종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고 계신다는 게 그때는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최근 얼마 동안 무기력하게 지내면서 그걸 구체적으로 깨달아가고 있다.
언젠가부터 말씀을 읽으면 마음과 영이 안정되고 컨디션이 좋아지는데 며칠간 말씀과 기도를 하지 않으면 우울감과 압박이 밀려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이게 말이 되는거냐고, 심리적인거라고 치부했었는데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이게 너무 오래 이러고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너 지금 내 앞에 서, 네 힘과 의지로 서'라고 하시는 느낌이다.
문득,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무리 하나님과 멀어져 있어도 날 보호해주고 계셨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네가 네 의지로, 내 앞에 서 있으라고 하시는 느낌. 왜 그런걸까?
내가 이제는 그럴 힘이, 그럴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 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은 아닐까... 마치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유식 그만 먹고, 내가 너 다 막아주는 것 그만하고, 너가 네 안에 근육을 만들고, 스스로 밥도 먹고 해야 하지 않겠니? 그래야 너가 다른 사람들을 품고, 끌고 가줄 수 있지 않겠어?'라고 말씀하시는 느낌이다. '세상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데, 너가 근육이 생겨야 그 안에서 버티지 언제까지 나한테 의지만 할래?'라고 하시는 느낌.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어디에 계시냐고 묻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있는 것 자체도 하나님이 보호하고 계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최근에 느낀다.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타락한 곳인지와 함께 우리는 우리 힘만으로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은 우선순위에서 저 뒤로 미뤄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하루가 살아지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막고 보호해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은혜다. 좋은 걸 받아서, 잘 되어서 그게 은혜가 아니라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 수 있는게, 하루가 살아지는 게 곧 은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거기에 머무르면 안되고, 우리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어야 할까? 그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의 일들을 사람을 통해서, 자발적인 의지로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찾으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만 누리는 게 아니라 그 은혜를 전하는, 살아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게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창조질서를 회복하는데 기여하는 삶이다.
그런데 그걸 알기 위해서는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각심도 더 생기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도 더 분명하게 느낀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고 싶다. 내 힘과 의지로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