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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하나님을 너무 신뢰하면 생기는 일

30대 중반 이후에는 연상 소개팅을 받은 적은 없는데 작년 언젠가부터 '내가 지금 까탈스럽게 굴 상황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며 모든 걸, 진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조건을 다 내려놓고, 내가 인위적인 노력을 들이진 않고 기도하며 기다리면서 있어 보기로 했다.
최근에는 3살 연상인 분과 소개팅을 했는데,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 받을 때부터 서로 비슷한 면들이 굉장히 많았다. 제주도를 주기적으로 가는 것도, 커피, 그것도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것도. 만나보니 기본적인 성향도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그 분도 헤어진 후 주선자에게 '비슷한 면이 되게 많아서 대화가 잘 통했어'라고 할 정도로.
나도 사람인데,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왜 여러 생각이 없었겠나. 하지만 작년부터 정말 모든 건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기에 일단은 더 만나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기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거절당하고 인연이 더 이어지기 힘들 듯하단 회신을 받았다.
주선자가 전달해준 사유는 '좋은 사람이지만 감당이 안될 것 같다. 뭐라고 말하기 힘든 데 아무튼 그렇다.'였다.
어떤 부분인지 직감적으로 이해가 됐다. 그 분과 대화중에 서로 맞지 않는 지점은 '재테크'에 대한 시선이었다. 그 분은 배당주를 늘려가면서 배당금을 일정수준 이상 받게 되면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조금 다른 입장이다. 그런 결정과 지향성에 반대하진 않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투자 관련 공부를 하면서 해야 하는데 지금 내 상황에선 그런 공부까지 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나는 투자 관련 공부하기보다는 내가 하는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투자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투자를 통해 내 가치가 높아지면 내 몸값도 올라가는 거니까.
그 과정에서 내가 한 말이 있다. '나는 되게 열심히 노력해서 미래를 계획하고, 내가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었는데 30대에 하나님이 그걸 다 깨셨다;라고. 30대에 내가 노력했던 건 다 안되었는데, 그때마다 말도 안되는 곳에서 일이 주어져서 그거로 먹고 살았다고. 그래서 사실 물질적인 부분은 하나님께서 필요한 건 그때마다 채워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내가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을 가고 있으면. 이 전제는 빼 먹지 말자.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입에 먹을 걸 넣어주실 것이란 게 아니다.
사실이다. 이제는 정말 그렇게 믿는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대책 없다고 생각했다. 30대까지는. 그런데 나의 30대부터 지금까지의 생계와 생활은 정말 그렇게 이어져 왔다. 다른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내가 처한 상황과 일이 들어온 경로는 내가 가장 디테일하게 알지 않나?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쪼였다 풀었다가 절묘하게 이뤄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수도 없이 내게 '너, 이래도 나 못 믿니?'라고 물어보시는 듯했다.
멍청하다고, 어리석다고, 맹목적이라고 해도 좋다. 내가 얼마나 의심이 많고 병적으로 생각이 많은 사람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단 것을 안다. 나도 지금 내가 말하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으니까.
이제는 하나님을 좀 신뢰하게 된 느낌이다. 이제서야. 만으로 40을 코 앞에 두고서야.
그런데 그렇게 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방식의 마인드로 살기 시작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이 이해 못하는 삶. 결정... 그런 걸 한다는 게 이런거구나... 똑같이 교회를 다니고 교회 일을 굉장히 많이 했었고, 틀에 박혀 있지 않은 사람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번 더 볼 생각조차 안 드는 사람이 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산다는 건, 난 아직 그 정도로는 살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사는 건 정말 엄청난 외로움이 수반되는 삶이겠구나... 싶다.
이 모든 걸 진작에 알았다면 사실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붙들지 않았을텐데... 또 그렇게 사는 것만의 행복과 즐거움까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이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는 건 100%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면서 내 계획은 세우지 않고 무중력 상태로 나를 세상에 던지는 것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살짝 내려놓는 게 아니라 내가 욕망하고 욕구하는 건 [전부] 내려놓는단 것이다. 이 두 글자 단어 두 개와 다섯 글자 하나가 이런 무게감인 줄을... 어렸을 땐 몰랐다. 그렇게 사는 게 어떤 것을 감당하고, 수반되는 지를.
그렇다고 해서 그 길이 엄청난 고행의 길인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내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나는 그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게 좋지 않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고,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기도하고, 고민하다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것에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지를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하나님께서 왜 어떤 길을 열고 닫으셨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뭔가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 건 사실은 내가 나를 모르고 내가 독이 되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로, 제대로 100% 믿고 신뢰하는 삶은 기쁨과 행복이 넘친다. 진짜 내려놓은 삶은 평안하다. 우리가 그걸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100% 믿거나 신뢰하지 않고, 내려놓지 못했으며, 내가 신보다 최소한 나 자신은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까지, 항상 이런 모드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정말 그렇게 믿는다. 최소한 머리로는. 그리고 마음도 깨어 있는 시간의 50% 이상은 그렇게 믿는 듯하다. 여전히 통장 잔고를 보면서 고민을 많이 하지만... 그때마다 이성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채우실거라고.
변시를 준비할 때, 그리고 박사논문을 쓸 때는 사실 시시때때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걸 상상했는데, 사실 불확실성은 지금이 더 심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스트레스로 인해 글을 쓰기는 커녕 읽지도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조차 버거울 때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기초공사는 된 느낌이라 안도하게 된다. 이제야 신앙과 믿음의 기초공사가 조금 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