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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욕심을 '사용'한다는 착각과 오만에 대하여

조금은 무기력하게 몇 달을 보냈다. 그렇다. [몇 달]을 보냈다. 중간중간에 해야 할 일들을 쳐내듯이 한 것 외에는 일도 별로 없었다. 상황이 조금은 복잡해져서 일은 없는데 돈이 들어오는 곳은 있었다. 무기력하게 지내도 괜찮았던 이유도 그 덕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별로 일을 하고 싶지 않아졌고, 한량으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나...란 생각도 했고, 도대체 내가 왜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일종의 허무주의 같은 게 몰려왔고, 그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못해 무기력하게 지냈다.
내가 왜 그런지, 무엇을 동력으로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를 몰랐다. 나는 어쩌다, 왜 그렇게 됐을까?
이 문제를 놓고 수개월을 싸웠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은,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했던 것은 다 나의 욕망과 욕심, 욕구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난 거창하게 하나님이 주신 일, 하나님의 계획을 말했지만, 그런 표현으로 목표를 정당화 했지만 사실은 나의 욕심과 욕망으로 항상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더라.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아침에 걷는데 문득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났다. '우리의 욕심과 욕망도 하나님을 위해 잘 쓰면 되는거야. 인간이 어떻게 그런 게 없을 수가 있어'라는 그럴듯한 말을 누군가 했었다.
거짓말이다. 교묘한 거짓말이다. 그런 생각은 우리가 우리의 욕심과 욕망을 우리 마음대로 다스리고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우린 그럴 능력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욕심과 욕망을 다스린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그것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우린 욕심과 욕망을 다스리거나 이용할 수 없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3년을 돌아보면 나는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은 나의 욕심과 욕망으로 열심을 다해 여러가지를 했고, 내가 열심을 다했음에도 어떤 일도 내가 바라는 성과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벽에 부딪히면서야 '내가 이걸 해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단 거지?'란 생각이 들었고, 그때 다 부질없단 생각이 들었으며, 그러자 욕심과 욕망은 꽤나 많이 사그라들었고, 그 상태가 되자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이제는 진심으로 욕심과 욕망, 야망은 없다. 딱히 장기적인 목표도 없다.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것은 있는데, 이것만 하고 죽으면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단 것은 있지만 그걸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내 앞에 열어주신 문들은 이유가 있을텐데, 하나님께서 내게 투자하신 것은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어떤 힘과 원동력으로 그 일들을 해야 할지에 대해 몇 달을 기도하고 고민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만 보고 가는 것이다. 그저 순종하는 것. 지금 내 앞에 있고, 기도하면 떠오르게 하시는 것들에 순종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것. 오직 하나님만을 동력으로 삼는 것. 그러면서 중간에 올라오는 나의 욕심과 욕망과는 싸우며 나가는 것. 그게 내가 지금, 이 순간에는 도달한 삶의 방식에 대한 결론이다.
우리는 자꾸 우리가 뭔가를 우리가 보고, 노력해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조차도 사실이 아니다. 우리 교회 통독범위가 지금 여호수아를 지나고 있는데, 여호수아서를 보면 여호수아는 자신의 계획과 생각과 목표를 세우고 길게 보면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말씀에는 반복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라는 부분만 반복된다. 그의 계획과 욕구와 욕망은 없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진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다. 길게, 크게, 비전 따위를 외치며 거창한 얘기를 하고 변화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에, 지금 내 앞에 주신 것들에 충성하고 집중하는 것. 긴, 큰 전쟁은 다 하나님께 맡기고 믿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 이성, 합리성과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것을 믿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물으며 가는 것.
그게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삶은 다른 사람들의 상식과 이성에는 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나의 생각과 계획과 욕심을 내려놓고 사는 것이, 진짜 기독교인으로 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