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QT를 할 때 기도는 공식처럼 회개, 감사, 그 다음에 다른 기도로 배웠다. 그때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회개를 해야 하며 뭐가 그리 감사할 게 많아야 하는지 모르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형식적인 것들을 말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기도를 5분 이상 하기 힘들단 형이 있었다. 나도 그때 그랬다. 나도 방언을 하지만 솔직히 방언이나 같은 소리를 내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기도는 길게 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이제는 기도를 하려고 앉거나 눈만 감아도 회개부터 한다. 때로는 회개만 하다가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는 감사할 게 넘친다. 어느 하나 당연한 게 없다는 것을 안 이후에는 내가 회개할 것을 아는 것도 감사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에는 나의 것만이 아니라 이 땅의 온갖 것들에 대해 다 기도하게 된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잘 서 있는 날, 순간의 얘기다.
기도할 게 5분도 되지 않는 건 우리가 내 자신으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를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눈에 뜨이게 되면 기도는 해도해도 끝이 없다. 이는 특히 기도는 말만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들으려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를 하며 성령님께서 어떻게 기도와 마음을 인도하시는지를 따라가야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더 대화할 게 많다. 그들의 삶을, 디테일들을 알기 때문에. 반면에 몇 년동안 보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할 게 없다. 서로의 삶을 잘 모르고 관심도 없기 때문에.
기도할 게 5분도 되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과 멀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어버버버 하면서 기도하는 게 아니더라도 기도할 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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