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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광야가 축복이자 특권인 이유

조심스러운 얘기다. 누군가에게 이 생각을 강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고, 나의 고백을 하고 싶을 뿐이다.
광야에서 10년 정도를 보낸 것 같다. 그 시기를 광야로 정의하는 건 단순히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광야 밖에서의 생활도 힘들기 때문에 힘들다고 해서 그게 다 광야인 것은 아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건 항상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광야'라고 하는 건 많은 경우 기복신앙적인 사고방식 때문인 경우가 많다.
지난 10년이 광야였던 것은, 내 인생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가지 않고 같은 곳을 빙빙돌면서 내가 의지할 곳은 하나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은 앞으로 가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내 상황과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는 붙들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누구도 붙들 대상이 없었고 오롯이 하나님과 1대1로만 상대해야 했다. 하나님께 대들고 지지고 복고 난리 법석을 해야만 했다.
지금도 광야를 완전히 벗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광야의 시간은 특권이자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한 가운데를 지날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것과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슬그머니 움직이시는 것을 보면 광야 끝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광야가 얼마나 축복이자 은혜이자 특권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광야는 하나님의 1대1 과외 시간이다. 하나님이 넘치지도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먹여 살려주시면서 인생과 하나님과 가치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과외 시간.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건 마치 추신수에게 타격 레슨을 받거나 류현진에게 투수 레슨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르브론 제임스나 마이클 조던에게 농구를 배우거나. 수영은 박태환? 축구는 손흥민한테!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런데 광야에서 하나님 외에는 볼 것이 없는 시간은 하나님의 특별과외 시간이다. 그러니 그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특권인가?
물론, 그 시간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고통은 우리 안에 잘못된, 왜곡된, 망가진 게 많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걸 바로 잡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고통이 수반될 뿐이다.
야구에서 우리의 타격폼이, 투구폼이, 축구와 농구에서 슈팅이나 드리블이, 수영에서 폼이 바뀌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훈련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수반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비시즌에 개인 레슨도 받으면서 트레이닝을 하는 건 그래야만 프로로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 대해서 프로여야 한다. 그래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남을 수 있다. 광야의 시간은 인생의 프로로 하나님께 직접 레슨을 받으며 훈련받고 교정받는 시간이다. 그러니 광야가 어찌 축복이고 특권이며 은혜가 아닐 수 있을까...
사실 이 얘기가 조심스러운 것은 이게 자칫하면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그건 축복이야!'라고 폭력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 동생의 얘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광야라기보다는 세상 한 가운데서 전쟁터에 나가 치열하게 전투를 하면서 몸과 마음에 온갖 상처를 다 입었단 것을 대화하면서 알게 됐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하나님께서 전쟁터에서 나를 보호하면서, 세상의 영향은 다 막아주시면서 나와 일대일로 훈련을 시키고 계셨더라... 그걸 깨달았다...
우리는 광야의 시간을, 하나님만 보고 살 수밖에 없는 시간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하나님은 사실 그 과정에서 세상의 온갖 풍파와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보호해주고 계신다.
그런데... 어떻게 광야에서의 시간을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광야의 시간은 축복이자 특권이자 은혜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