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분명히 해둘 것은 나는 어느 정당의 지지자도 아니다. 이번에도 1, 2번을 뽑지 않았다.
정치는 헤드라인만 봐서는 전체적인 국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안에서 개개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지를 보면 청와대 이전을 둘러싼 판이 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결단 내린 윤석열은 진화 중...국민에게 끌려가선 안 돼"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나올 수 있는 건 야당에서도 청와대 이전에 대해서 반대되는 의견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실질적으로 [우리도 이건 말도 안되는 거 알아요]라고 인터뷰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문화 개방을 끼워넣었지만 예시가 전부 왕과 독재정권이라는 사실도 눈여겨 봐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강력하게 싸우지 않고, 묘하게 '당선인의 의지'를 흘린 것도 마찬가지.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의례적인 얘기처럼 들리지만 "대통령의 우려와 입장을 잘 알겠다. 내부 논의를 거쳐 당선인과 상의하겠다" 것도 한 걸음 물러나는 느낌을 준다. 이 역시도 '나는 이 판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물론, 야당에게도 다음 대통령이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에겐 자신의 명예와 2년 후에 올 선거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은 정치판에서 굴렀기 때문에 이 문제가 어디로 흘러갈지,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떨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걸 강하게만 밀어부치면 총선 때 자신의 정당은 물론이고 본인들도 패배할 수 있음을 알기에 이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정치란게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면서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의사가 국정운영에 반영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원리다.
개인적으로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로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 군복무를 한미연합사에서 하면서 국방부 건물에 종종 갔던 입장에서 개인적인 의견은 있다. 하지만 그걸 기록이 남는 공간에 쓸 정도로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용산이 이렇다 저렇다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문제는 절차에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개인 집을 이사만 해도 리모델링에 한 달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 건은 국방부, 합참, 청와대를 옮기는 국가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는 당연히 더 신중해야 하고, 고려해야 할 게 많다. 그런데 50일 만에 이걸 다 한다? 더군다나 선거과정에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던 용산으로? 이건 누가 봐도 졸속행정에 무리수다.
이게 문제가 되는 언급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만약 선거과정에서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겠다고 했다면 이번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광화문에는 거의 사는 사람들이 없는 것과 달리 국방부 인근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번 대선의 표 차이에서 봤을 때 만약 용산이 언급되었다면 용산구의 표심 하나만으로도 결과도 달라졌을 수 있다.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집무실 위치를 변경하는 것이 [겨우 위치의 변경]이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도 공약의 파기와 다를 바 없는데, 공약을 파기가 아닌 것처럼 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느낌이 없지 않다.
(정치인들은 전적으로 다음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주장은 하지만) 이 의사결정을 누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정치적 계산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현실적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으니 우리가 결단을 내리는 것을 보여주고 지금의 여당과 청와대가 반대하는 것으로 그림을 그리려는 계산이 가능하니까. 만약 현정부가 승인을 하면 그 뒤에 일어나는 문제는 "이전 정부에서 충분히 고려도 하지 않고 승인을 했다"고 할 수 있고, 반대하면 "우리가 못한 게 아니라 전정부가 반대한거다"라고 주장할 수 있으니까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판을 너무 얕게 읽은 것이다. 이번 대선이 압승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만 이번에는 말 그대로 종이 한장 차이로 승부가 나지 않았나? 그것도 보수적인 어르신들 마저 상대가 싫어서 뽑지만 한숨만 나온다고 하며 다음 대통령에 표를 던진 판이 아닌가?
청와대 이전의 건은 누가 봐도 무리수다. 이사를 한 번만 해 봤어도 이건 무리수라는 걸 알 수 있다. 국민을 개, 돼지로 보지 않은 이상 정치쇼도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없다. 지금 이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야당에 표를 줄 사람들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이번 건은 말이 안된다.
이 정도로 말이 안되는 결정은 역풍을 불어올 뿐이다. 그건 이미 집권여당이 많은 사례에서 입증하지 않았나? 이번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선을 넘어선 결정을 여당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바람은 또 다시 반대로 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개, 돼지도, 바보도 아니다. 조갑제 씨도 반대했다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악수다. 이번 건은 오히려 여당 사람들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야당에서도 아직 대통령이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며 본인이 살 길을 찾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다.
야당지지자들이라면 지금 여당을 욕하면서 이전하는 비용을 대라고 하면 안된다. 이 판이 그대로 간다면 2년 후에는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2년 전에 여당이 180석 넘게 차지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효율, 속도전 이런 말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독재정권에서나 쓰이는 표현들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원래 비효율이,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독재와 인치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게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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