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지막 날에 나의 3월을 돌아보니 하나님은 3월 내내 내게 시험을 허락하셨던 것 같다. 올해의 3월은 내게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3월에는 내가 들어가 있는 드라마가 엎어지기 직전까지 갔고, 일을 하면서 비용을 받고 있는 유튜브 채널 주인인 형이 코로나가 확진되어 유튜브는 개점휴업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서 연애사업도 뭔가 될듯 말듯의 반복이었다. 심지어 제3자가 00자매가 내게 호감이 있다는 얘기를 전달해주기까지...
금전적인 부분은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그나마 숨 쉴 수 있게, 안정적으로 수입원이 되어주고 있는 두 경로가 흔들렸고, 그나마도 4월에는 중심축이 되어주는 드라마가 날라갈 수도 있는 상황.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 것이며, 흔들리는 마음을 안고 어떤 창작활동을 할 수가 있을지가 문제가 되었다.
연애사업의 경우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될 듯, 맞는 듯 아닌 만남이 연속되었고 그 와중에 내게 호감이 있다는 분의 얘기를 들으니 그 분을 어떻게든 잡고 싶은 마음도 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 과정에서는 내가 외롭고, 솔로를 탈출하고 싶어서, 꽤나 오래 쉰 연애를 하고 싶어서 상대를 잡으려는 건지, 잡힐듯한 사람들을 잡고 싶은건지가 헷갈렸다. 더군다나 내게 호감이 있다는 분은 공동체에 엮여 있는 분이라 내가 잘못 움직이면 이건 공동체에 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돌아보면 3월이 아니라 12월부터 시작이었다. 들어가 있는 드라마는 편성 여부가 12월부터 질질질 끌리고 있었고, 연애도 12월부터 계속 뭔가가 될듯 안되고 있을듯 없는 패턴이 이어졌다. 3월에 유튜브 채널 주인인 형이 코로나에 걸린 건 거기에 무게 하나를 사뿐하게 얹은 수준의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예전보다 조금은 하나님을 신뢰할 줄 알게 됐단 것을 깨달았다. 금전적인 부분은, 두렵지가 않더라. 마음이 복잡하고 흔들리긴 했는데 그 뒤에는 항상 '하나님이 먹이실거야. 그때 되면 또 다른 걸 주시겠지'라고 생각했고, 사실 드라마는 엎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연애는... 그보다 조금 더 많이 어려웠다. 연락을 할까, 말까, 따로 보자고 할까, 말까를 수도 없이 고민했다. 많으면 하루에 수 십번도 더.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이건 내 욕구와 욕망이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만나게 하실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하시고, 마음도 여실 것이라 믿고 그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연애사업은 진전이 없다. 아, 엄청나게 노력을 했었는데 이젠 진짜 잠잠하게 있기로 했으니 그게 진전이라면 진전이겠다. 금전적인 부분은, 그렇게 질질 끌던 드라마가 어제 편성이 실질적으로 확정되었다. 디즈니에 편성될 예정이라 미국 본사의 승인이 나야하지만 4달 만에 디즈니 코리아의 편성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유튜브 채널은, 거의 2달 만에 어제 촬영을 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시험하실까? 어떤 것이 하나님의 시험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에게 힘든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게 다 시험은 아니다. 현실은, 세상 속에서 사는 건 원래 힘들게 되어 있다. 그건 세상은 경쟁적이고, 이기적이고, 물질주의적이고 우리도 그러하며, 우리의 욕망과 욕구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뭔가를 가지면 항상 더 가지고 싶고, 뭔가를 이루고 더 이루고 싶어진다. 그것도 아주, 아주 빨리.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안되니 세상에서 사는 건 우리가 오롯이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는 이상 필연적으로 고통으로 가득찰 수 밖에 없다. 그게 성경이 말하는 지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리는 시험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믿음에 대해서 이뤄진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면 하게 될 결정과 갖게 되는 마음과 그렇지 않으면 하게 되는 결정과 갖게 되는 마음 앞에서. 하나님의 시험은 그 앞에서 우리가 상황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기준에 대해서 이뤄진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평생 이해되지 않던 지점이 있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면서 우리를 굳이 시험하셔야 하나? 우리를 다 아신다면 시험하지 않으셔도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알게 되실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항상 들었다.
이번 시험을 지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시험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시고,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실지 아시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믿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시험을 허락하신다.
생각해보면 이는 현실에서 보는 시험들도 마찬가지다. 시험성적은 줄 세우기 위해 쓰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 본질적인 목적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공부했고,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은 잘 보면 지금 많이 안다는 걸 확인할 수 있고, 못 보면 어느 지점이 어느 정도 부족한 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한 '과정'으로서의 시험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중간확인을 함으로써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과 채워야 할 것들을 알게 해주기 위해서 필요하고, 이뤄진다. 시험은 '교육'이란 측면에서는 사실은 학생을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시험도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신뢰의 현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시험을 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과정에서 실력이 늘듯이, 시험을 견뎌내면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성장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다.
예전의 나였다면,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번에도 조금은 그러기도 했다.). 그리고 내게 호감이 있다는 분에게 연락을 해서 솔로부대를 탈영이라도 하려했을 것이다. 예전의 나라면 이번에 경험한 불안감, 두려움과 외로움을 훨씬 크게 느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어떻게든 그 사람을 잡으려 했을 것이다.
올해를 25%나 흘려보낸 시점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그래도 바른 방향으로, 잘 가고 있어 다행이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다행이다. 그리고 그걸 알 수 있도록 시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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