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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광야를 떠나고 싶지 않다. 이곳이 좋아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광야를 떠날 시간이 거의 온 듯하다. 4월부터 내게 쏟아지는 일들과 내가 하기로 마음 먹은 일들을 합하면 방황을 할 틈이 없을 듯하다. 믿거나 말거나 어제는 지도교수님을 만나 무려 2년치 일감을 받아왔다. 자의도 타의도 아닌 애매한 모드로 받아들인 일들인데, 이게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선 당연히 웃어야 할 일인데 내 상황으로 인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광야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등떠미심은 곳곳에서 징조가 보인다. 접게 될 줄 알았던 드라마가 편성이 된 건 그 시작일 뿐이었다. 이번주에는 심지어 뜬금없이 다음주에 만나서 일 얘기를 좀 하자는 연락이 오지를 않나, 이번주에는 점심 겸 회의로 만나신 분이 '이건 정박사 믿고 진행하는거야'라며 부담을 주지 않나... 어제는 그 정점이었다. 세상에 2년치 일을 떠안게 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얼핏 생각하면 이제 신나고 감사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두렵다. 인생이 너무 오래 머물고 맴돌고 있었고, 뭔가 일이 잘 풀리는 게 익숙하지 않다. 20대 후반까지는 일이 항상 잘 풀리는데만 익숙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뭔가 이렇게 시원하고 풀리고 일이 쌓이는 게 익숙하지 않고, 새로워서 두렵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게 맞나, 정말인가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러한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사실 이제는 진짜 광야가 축복이었음을, 특권이었음을 알고 나니 그곳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어졌다.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하나님이 보호해주시고, 기본적으로 먹여주시면서 하나님과 인생과 세상과 내 공부만 하면 되는 광야가 사실은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하며 유유자적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9장 5절에서 베드로가 [여기 있는 게 좋으니 천막을 치고 머무시죠]라고 했던게 그렇게도 한심해 보였는데, 이젠 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된다. 이심전심이다. 인생이 앞으로 가는 걸 보면서 언젠가부터 '하나님, 저 큰 돈 못 벌고 결혼 못해도 되니까, 그냥 딱 이 정도 수준으로 이렇게 살게 해주시죠. 저는 광야가 좋아요'라고 기도를 계속하게 된다. 이게... 광야의 삶이 얼마나 특별하고 축복인지를 알게 되고 나니, 다 필요 없고 그냥 여기에서 하나님과 오붓하게 지내고 싶어요.'라는 생각만 든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곳에 머무르게 해주지 않으실 것이란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누구도 평생 광야에 머무르게 해주시지 않았고, 내게 주신 것들은 이 땅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그게 싫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는 왜 광야에 머무는 동안 그리도 이곳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인생이 앞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을까.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나는 왜 광야의 시간을 오롯이 누리지 못했을까?! 왜 여유를 갖고 즐기지 못했을까...
아직 광야 밖으로 완전히 나온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다. 뭔가 건물과 사람과 세상이 오랜만에 보이기는 하는데, 길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저건 내가 갈 곳이 아니라며, 내가 갈 길이 아니라면서 다른 길로 가고 싶다. 요나처럼. 광야에 더 있고 싶다.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를 매일 수 십번도 더 외치고 있다.
하나님은 나의 이 기도도 들어주지 않으시겠지... 하... 고집불통 양반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