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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사랑

나이든 사랑과 사람

연애와 결혼의 차이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발랄하고 순수하며 착한 후배가 있다. 곧 결혼 2주년이 된다며 인스타그램에 남편과 있는 사진을 올렸는데 그 친구의 부부생활에서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해서 들었기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틱틱대며 연락을 해볼까 싶다가도, 연휴가 아직 남았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그런데 그 친구의 부부생활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던 중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충격적인 말이 있다면 그건 '돌아보면 저는 결혼을 연애 시작하는 거랑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라는 말이 그것이었다. 그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걸 들었을 때 충격의 영향보다는 사실 나도 30 전후에 결혼을 했다면 비슷한 생각과 느낌으로 결혼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0이 지난지도 몇 년이 지난 지금, 주위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부분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상당수는 다행히도 아이를 큰 어려움 없이 가진 상황에서 내게 결혼은 조금 많이 다른 문제다. 너무 현실을 많이 알아버렸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남편이 감당해야 할 일들과, 한 가정을 책임진다는 무게감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확히 안다. 싱글로 사는 것이 얼마나 가볍고 행복한지 아냐고 묻는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이제는 가정을 꾸린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갑갑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사랑도 바뀌었다. 

그렇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방향으로 철이 들어가면서, 내 사랑도 변했다. 지난 몇 달간 다양한 경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과거랑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설레임을 느끼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분명히 아니었다. 너무나도 설레어서 잠이 오지 않은 적도 있고, 새벽까지 통화를 며칠씩 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정말 이 사람과 평생 살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순간순간 하게 되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30대 중반에는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을 거짓으로 입증하는 설레임이 내 안에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경험들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나의 호르몬 작용이었다. 심지어는 이 사람과 평생을 살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 관계가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되고 나서 그 사람과 가정을 꾸리면 무너질 내 삶의 영역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한 이후에는 나의 호르몬 작용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아니,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지 않지만 이성적으로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과 만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 작용을 베이스로 이제는 이성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더 길게는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슬플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것이 슬프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슬플 일이 아닌 것은 내가 감정적인 측면을 무시하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현실적인 조건들을 따졌다면 사실 결혼을 급하게 서둘렀어야 할 사람들도 내가 소개를 받았던 사람들 중에 있었기 때문에 내 사랑이 바뀌었다는 것이 그런 것을 의미한다면 난 지금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조건을 여기에 나열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친한 형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런 사람은 잡았어야 하는 거라는 얘기가 나온 사람들이 있었으나, 감정적인 면은 나도 어쩔 수 없었기에 더 길게 인연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내 감정과 상관없이 결혼할만한 사람을 찾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감정에만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상대방의 조건은 지금도 꼼꼼하게 따질 생각은 없다. 어떤 남자들은 자신보다 뛰어난 여자들이 부담스럽다고 하지만 사실 난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또 상대가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면에서 엄청나게 풍요로운 게 내게 그렇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는 않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참 다양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는 본인의 차와 집이 있었던 친구도 있었지만, 또 NGO에서 일하면서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도 돈이 모이지 않는 연봉을 받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그런 조건은 과거에도 내게 그렇게 큰 요소는 아니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안정되고 행복한지를 알게 된 것 같다. 그런데 그 안정되고 행복하다는 것이 감정적인 동요가 생긴다고 해서 생기는 건 아니더라.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나고 새벽까지 통화를 해도 편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한동안 연락을 안 해도 편하면서 또 생각날 때는 그리워지는 그런 사람이 있더라. 그리고 내가 오래 알았다고 해서 그 사람과 있는 것이 안정되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안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해서 안정되고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더라. 그냥, 두 사람이 만나면 일어나는 화학반응이 그런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조건을 따지기보다 그런 나의 느낌을 따라가기로 했다. 

사람의 느낌이라는 것

어떤 이들은 감정도 아닌 사람의 느낌을 어떻게 믿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조금 더 예민한 사람들이 있고 둔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그런 느낌을 믿겠다는 것은 첫 번째로 내가 그런 느낌에 예민한 편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최근에 가족 간의 관계에서 내게 느껴지는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 간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평안함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고맙기 때문에, 함께 있을 때 그런 느낌일 수 있는 사람과는 평생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감정과 이성의 도움을 받으면서 말이다.^^

심장에만 귀를 기울이며 연애를 하던 사람이, 이제는 심장과 머리와 느낌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연애를 시작한다는 측면에서는 과거보다 많이 까다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보다는 더 이상 굳이 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더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책임을 지고 보호해주고, 보호받는 가정을 꾸리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상태가 어쩌면 그 길로 나를 더 빨리 이끌어 가 줄지도 모른다. 속도보다는 방향이라는 것은 가정을 꾸리는데도 적용되는 것이 당연할 뿐 아니라, 어차피 한 명과 함께 갈 길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