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기 전
사실 이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한 지는 10년도 더 된 것 같다. 군대 가기 전후에, 20대 초반에 남자들끼리 모였을 때 우리의 우정을 확인하고자 했던 말들 같으니까. 그리고 그때는 누군가가 연애를 하면 그게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화제가 되었고, 그에 따라 격렬하게 토론을 하고는 한듯하다. 여자 친구 만난다고 우리가 모이는데 빠지거나 하면 죽이네 살리네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사실 개인적으로도 내 친구가 만났던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되게 진지하게 저 고민을 했었다. 내가 누군가랑 만나는데 그 친구를 내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이 볼 수 없다면 내가 행복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고민과 마음이 너무 커서 입대하기 며칠 전에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었고, 모임에서 술을 가득 마신 상태라서 그런지 입이 통제가 안되어서 나도 모르게 '내가 너 정말 좋아하는 거 알지?'라고 말을 하고는 술이 확 깨어서 둘러대느라 난리를 쳤던 기억이 지금도 있다.
입대 후 그 친구는 내가 훈련소에 있을 때 매주 편지를 한 통 이상 썼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한 통도 내게 전달이 되지 않았고, 그 친구는 몇 년 전에 또 다른 내 친구와 가정을 꾸렸다. 놀랍게도 그 친구와 그 친구가 예전에 만났던 친구도 잘 아는 사이였다.
우정의 득과 실.
사실 처음에는 그 둘이 결혼을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때만 해도 내게는 사람들이 말하는 '우정'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고, 지금 돌아보면 어쩌면 그 친구들이 더 지혜로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평생 가정을 꾸리지 않을 생각이 아니라면 우정은, 친구 관계는 어느 순간 소홀해지게 되어있기에. 그리고 각자 가정이 생기고, 더군다나 아이까지 생기면 그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게 맞기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친구가, 우정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친구는 힘들 때 기댈만한 나무가 되어주기도 하고, 사실 가정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아니 가정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하지만 만약 정말 그 사람과 평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상대와의 만남이 스쳐가는 인연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면 사실 우정보다는 사랑이 먼저인 게 맞을 것 같다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정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사랑은, 가정은 그 사람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당위적으로나마 그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랑에도 우정이 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사람들은, 아니 최소한 내 20대 초반에 나와 친구들은 사랑과 우정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해서 오래 함께 살았거나, 오랜 기간 동안 연애를 한 사람들은 정으로 살지 사랑으로 사느냐고 하지만 사실 사랑 안에 우정은 포함이 되어있는 개념인 듯하다. 우정(友情)을 한자로 보면 친구와의 정을 의미하는데, '友'는 두 손을 반복해서 잡게 되는 사람을 형상화하고 있다. 결국 보고 또 보게 되는 사람이 친구라는 의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랑 '애(爱)'를 약자 혹은 간자로 쓰게 되면 아래에 '友'가 들어가 있고, 그 위에는 마음 심이 놓여있다. 즉, 한자로 봤을 때 사랑이란 우정에 마음이 포함되어 있는 감정이라는 의미란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감정적인 상태로 설명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랑 안에는 우정의 감정과 관계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사실 사랑이냐 우정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논의를 하는 것은 논란을 위해 논란을 야기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사랑이냐 우정이냐의 문제를 더 이상 그렇게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하면 그래도 아직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꽤나 길게 남은 나이지만, 경험적으로나 이런 사랑과 우정의 특징들에 비춰봤을 때 결국에는 사랑이 우정보다 먼저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싶다.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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