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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창세기 45-47장 묵상

예전에는 창세기에서 야곱이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돌아온 후에 애굽과 가나안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요셉이 나오는 부분을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유다에게 장자권이 부여되는 과정으로 읽으니 그 부분이 해결된다.

그 부분은 야곱이, 이스라엘이 애굽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겪었을 것들을 보여준다. 생각해보자. 야곱의 아들들은 7년 중 1-2년 정도의 가뭄을 이기지 못하고, 두 번째 방문에서는 자신들을 애굽의 총리가 해할까 봐 그것이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 애굽을 방문했다. 자신들의 가방 안에 있던 돈을 다 가지고. 그 돈을 그대로 가지고 애굽까지 가야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돈으로 살 수 있는게 없을 정도로 가뭄이 심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그들이 돈으로 다른 것을 살 수 있었다면 그들은 돈으로 샀을 것이다.

만약 유다를 통해서 요셉을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보내놓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약속하여 아브라함에서 이삭, 이삭에서 야곱으로 이어진 계보가 어떻게 되었을까? 사라졌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애굽으로 들어온 이후 가뭄으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들이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는 분이심을, 지금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미래에 올 일을 하나님께서 알고 준비하셔서 일어나게 하시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야곱이 아들과 그 가족을 끌고 애굽으로 오는 과정에서도 몇가지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그의 자손 안에는 그의 아들이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여 낳은 자'도 있었고, 요셉도 애굽에서 결혼을 했다. 이는 당시에 야곱의 가정 안에서 '민족과 혈연'을 중심으로, 종교를 중심으로만 가정을 꾸리고 그것을 율법적으로 강요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지금의 유대인 또는 현재 한국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 일부가 집착하는 것처럼 같은 종교, 같은 민족에 집착할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왜 이삭에 대해서는 그렇게 같은 집안에서 결혼하는 것에 집착하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을까? 그건 그 당시 이방족속들 사이에 껴서 유목민으로 사는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통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모든 결정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더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를 기준으로 고민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묻고, 듣고 나서 결정하면 되지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것은 아니다.

또한 야곱이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들어올 때 사람 수도 눈에 들어온다. 라이프성경 사전은 분명하게 [ 성경에서 숫자는 단순한 수치 이상으로, 다양한 상징성과 비유적 의미를 함축한 것으로 사용된다.]고 밝힌다. 그리고 숫자 6, 7, 10은 유대인에게 굉장히 유의미한 숫자로 7은 완전수를, 6은 인간 또는 부정함을, 10은 온전함 또는 완성이나 예배를 의미한다. 야곱이 애굽으로 끌고 들어온 가족은 66명으로 인간적인 또는 부정함이 두번 강조된 숫자다. 그런데 요셉의 가족까지 합해지면 70이 된다. 이는 창세기 기자가 이스라엘 민족이 요셉의 가족까지 합쳐져서 완성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려 한 것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야곱은 요셉에게 자신을 애굽땅에 묻지 말고 고향에 묻기로 맹세하라고 한다. 이는 두 가지 시사점이 있는데, 이는 야곱이 본인이 애굽에 와 있어도 하나님께 속한 자이고, 하나님께 돌아갈 자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독교인도 그러해야 한다. 세상 속에 살아도 우리가 돌아갈 곳은 하나님께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 야곱과 그 가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분리되지는 않지만 구분된 삶, 그리고 그걸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야곱이 유다가 아닌 요셉에게 이 부탁을 하는 것 또한 시선을 끈다. 야곱이 그러한 것은 요셉이 세상의 권력을 가진 자이고, 자신이 사랑한 라헬에게서 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들이어서 인간적인 애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후에 유다에게 장자의 축복을 준다. 장자가 아닌 자에게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도 물리적으로 장자가 아니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그러하도록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야곱]이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축복을 했다면, 그는 요셉에게 장자의 축복을 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과 우리의 마음과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고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항상 후자여야 한다. 하나님은 유다와 요셉을 통해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행하시는 분임을 증명하지 않으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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