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창세기를, 일반적으로 '요셉 이야기'라고 인식하던 것에 대한 관점이 '유다 이야기'로 바뀌니 유다가 계속 들어온다. 그리고 내가 이토록 유다를 간과하고 살았나 싶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요셉인지 모르고 왔다 돌아갔다가 다시 요셉에게 오는 과정에서 유다는 많은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야곱을 설득해서 다시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가고, 요셉에게는 자신의 동생 대신 자신이 남겠다고 설명한다. 44장은 거의 유다가 혼자 말을 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유다의 모습에서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하는 리더십이 보인다. 자신의 동생 짐 안에서 총리의 은잔이 발견되었다면, 그대신 남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그 희생을 하겠다고 나섰다. 요셉이 요셉인 줄도 모르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요셉은 이렇게 나서는 유다를 보면서 감동했을 것이다. 자신을 살린 것도 유다이고, 이젠 그 유다가 동생을 위해 대신해서 목숨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아닌가?
요셉은 자신이 선택해서 애굽에, 고난의 길에 간 것이 아니다. 그가 그 안에서 버텨낸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게 요셉의 능력과 노력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반면에 유다는 요셉을 죽이자는 형제들을 설득해 냈고, 동생 대신 자발적으로 남기로 했다.
창세기 기자는 어쩌면 요셉과 유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일을 이루신다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일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희생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생각이 많아지고, 감동이 밀려온다. 관점을 살짝 바꿨을 뿐인데 예전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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