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요셉, 그 형제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모태신앙'이라는 표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도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지만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게 어머니 배에 있을 때부터 신앙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이 표현이 알게 모르게 자신의 신앙이 괜찮음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면도 있는게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즘 표현으로 하면 모두 모태신앙이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자의 후손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어떠했나?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나? 그들은 자신들끼리 싸웠다. 그리고 여기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으로 봤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 애굽 땅에 있는 이방인들과도 결혼을 하며 문화도 뒤섞였을 것이다. 사실 유대인들이 '혈연'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커뮤니키를 형성하게 우스운 것은 이처럼 소위 말하는 유대민족은 중간에 다른 민족과 섞일 수밖에 없는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신앙을 가진 부모를 두면 그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 기본적인 틀을 최초에는 형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개인의 신앙은 개인에게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선택받은 민족'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그 후손은 몇 세대 지나지 않아 하나님을 떠났다. 부모의 신앙이 곧 자식의 신앙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믿는 가정 안에 태어났다고 해서 내 신앙은 괜찮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위험한 착각일수도 있다.
그리고 예전부터 구약을 읽을 때 가장 물음표가 가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이 3장에서 꽤나 자주 나온다. 그런데 오늘 차분히 읽으면서 그건 신비주의적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이다'라는 의도로 쓰인 것이 아니라 각 성경을 쓴 기록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그 안에서 고백한 것일테다. 그리고 그건 각 성서를 쓴 사람들이 쓰는 시점에서 돌아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인도하심이었다고 고백한 것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그들은 그 일이 일어난 당시에는 그게 하나님의 은혜고 뜻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즉, 그걸 읽으면서 '하나님이 이걸 이렇게 끌어주셨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안해 주시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 엄청난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도 그 일을 겪을 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하루,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오늘 본문 부분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세가 시내산이든 어디에서든 출애굽기를 썼을 때 [돌아보니] 그들이 그렇게 살아내진 것이, 본인이 애굽 왕의 가족 안에서 살게 되고, 본인이 광야에 나가게 되고, 유대민족이 번성하고, 무사히 빠져 나온 것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 아들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심이었고 그것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그 부분일 것이다.
특정한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모른다. 그걸 완벽하게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때 상황과 개인의 성향등을 보면 우리는 그제서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그때 주어지는 상황과 결과를 놓고 일희일비해서는 안되며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야 하고 성공하더라도 자만하거나 그것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하실 일을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고, 그들을 지키고 이끌어내신 것은 단순히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였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낼 통로. 그리고 사실 하나님께서 '민족적인 측면에서' 그들을 선택하신 목적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실현되고 완성되었다. 그 이후에는 사실 이스라엘 민족과 다른 사람들을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창세기의 내용을 믿는다면 '민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이고 인간이 만든 개념임을 알 수 있지 않나? 이는 생물학적으로도 그렇다.
인간은 원죄를 지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한 준비를 하셨고, 구약은 그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는데는 특별한 그들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 또한 은혜였다. 구약은 어쩌면 '하나님의 뜻과 은혜'가 아니었다면 끊어졌을 유대민족에 대한 이야기, 그들에게 생명줄을 유지시켜준 이유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다시 하나님 앞으로.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구원'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구약은 그러한 하나님의 의지, 노력과 포기하지 않음에 대한 기록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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