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할 게 있어야 하지!'
나만 많이 들은 말일까? 기준이 높은 부모님을 둔 덕에 사실 난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부모님에게 칭찬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나마 아버지는 술이 좀 취해서 들어오시면 술김에 칭찬을 쏟아내고 포옹을 하려고 하시고는 했는데 솔직히 그렇게 들은 칭찬은 칭찬으로 들리지 않고 그 상황이 그렇게 좋게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께서 내가 한 일들에 대해서 뿌듯하게 여긴 적이 없으신 건 아니다. 나중에 들어보면 뒤에서 주위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내 자랑을 하시기도 했다는 걸 건너서 듣기도 했고, 부모님과 부딪힌 이후에 그런데 우리 집은 정말 칭찬을 안 한다는 얘기를 할 때면 두 분 모두, 특히 어머니께서는 미안해하셨으니까.
두 분이 칭찬을 입 밖에 내서 잘 하지 못하시는 것은 두 분의 부모님이 그러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성장한 환경의 영향을 받고, 그 환경에서 받은 대로 주는 경향이 있기에... 그런데 그게 비단 우리 집 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칭찬을 하는데 인색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칭찬할 만한'것이라는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다. 칭찬할 게 없다는 것은 그만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많다는 걸 의미하고,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그 사람의 인생은 그만큼 불행할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그의 인생의 일부가 되지 않거나 벗어나게 되면 그건 곧바로 행복의 총량의 감소로 이어지기에.
반면에 칭찬을 많이 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하지 않기에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지 않겠나? 이처럼 인생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적어지면 그만큼 인생에서 행복은 늘어나게 되어있다. 내게 주어진 어느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면, 그것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도 덜 원망하게 되지 않을는지.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작은 것들이 모두 소중하게 여겨지지는 않을는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아마 경상도 남자도 춤을 추게 할 것이다. 칭찬은 실제로 그런 힘이 있다. 사람들은 너무 칭찬해주면 자신이 잘난 줄 안다고 하는데, 본인의 상대적인 잘남과 못남은 본인이 부딪히면서 깨달으면 되는 것이지 칭찬을 해주지 않음으로써 알게 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칭찬을 자주 들음으로써 그 사람이 본인의 한계를 깨닫게 되더라도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힘이 생긴다. 칭찬을 자주 들으면, 자아가 건강해지게 되어 있으니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많은 노력이 드는 것도 아니지 않나. 칭찬 한 마디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이제는 칭찬할 게 없다는 말을 할 시간에 칭찬 한 마디를 더 해주자. 모든 것은 관점의 차이일 뿐이며 누구에게나 칭찬을 받을 부분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