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에 기회가 되어 야후에서 보내주는 응원단으로 독일에 갔었다. 두 경기를 봤는데 그 사이에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해서 문화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도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갔더니 그곳은 그저 서양사람들이 많은 에버랜드처럼 느껴졌다.
워낙 부모님께서 여행을 좋아하셔서 방학 때면 거의 습관처럼 여행을 다녔지만 본격적으로 여행을 어떻게 하는지, 왜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왜 여행을 다니는지. 왜 굳이 비싼 돈을 내가면서 여행을 떠나야 하며, 왜 특정한 숙소에 묵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겨우 2년 정도 회사를 다닐 때 첫 해는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 그저 서울 안에서 걷고, 쉬고, 걷고 쉬며 휴가를 보냈고, 2년 차 때는 혼자 스페인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때도 상당히 빠릿빠릿한(?) 일정으로 돌아다녔는데, 당시에 대학원 원서를 써야 해서 마지막 4일 동안 바르셀로나에 머물렀고, 그 이후로 그 스페인에서의 4일은 내 여행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실 난 이제 여행을 떠나도 많은 것을 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뭔가를 '찍었다'는 뿌듯함은 오래가지 않았고, 또 생각보다 내가 그걸 '찍었다'는 것을 자랑할 자리도 많이 없으며, 그맇게 '찍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부러워하기에는 이젠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크게 의미가 부여가 되지는 않더라.
대신 난 정말 숨이 막힐 때 여행을 떠나고, 여행은 내가 있는 곳을 떠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한 번 가면 한 도시에 3-4일 정도는 있으면서 그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시장을 돌아보며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내 인생은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회고한다. 난 그러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체력이 허락을 하는 만큼 가능하면 호스텔에 묵는다. 그리고 저녁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그들에게 내 인생을 보여준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 인생이 어디쯤에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를 돌아본다.
내게 여행은 그런 것이다. 내 갑갑한 현실에서 떠나 조금 멀리서 내 인생을 관찰자 입장에서 돌아보고, 쉬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보는 것. 물론 박물관이나 미술관들도 땡기면(?) 간다. 하지만 그렇게 가는 경우에도 유명한 작가나 작품을 찾아다니기보다 그림을 하나, 하나 보면서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그림을 그렸을지, 그리고 그림에 나온 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지를 상상하면서 내 인생을 다시 들여다보는, 내겐 그런 게 여행이다.
사람들마다 여행에 부여하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그리고 나 또한 '찍고 오는' 여행을 한 적이 있지만 최소한 내 경험으로는 그런 여행은 여행을 떠나기 이전의 피곤함보다 더 큰 현실에서의 회의감을 선물해줬던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부턴가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서, 발은 현실에 붙이고 그 여행을 통해 바닥이 난 내 기름통에 연료를 붓는 내 방식의 여행을 찾았던 것도 같고...
어차피 우리는 현실에서 완전히 발을 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1년간 세계일주를 하더라도 언젠가는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사실 이제는 '찍을만한 곳'은 인터넷에서도 사진, 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는 완전히 현실을 떠나기 위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내 현실에 연료를 충전해 줄 수 있는 '내 방식대로'의 여행을 찾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떠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보다는 말이다.
물론 사람들마다 본인에게 맞는 여행은 다르겠지만.
멀리 떠나야 그것이 꼭 여행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