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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단편적인 생각들

김새론 배우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명의 어린 영혼이 하늘로 갔다.  배우를  알지 못한다. 음주운전을 했을 당시 나이를   찾아보고 '아직 어린친구가 이른 성공에 취해있었나 보다. 컴백하는데 시간이  걸리겠네' 싶었다.  뒤로  번씩 포털에 관련 뉴스가 뜰때면 너무 한다 싶었다. 알바를 하면 알바를 한다고 뭐라고 해, 연극 무대에 서려고 하면 서지 말라고 해. 그러더니 그녀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고를 쳤을 당시 만으로 22살이었더라.  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인기를 얻었을  어떤 느낌이었을 지를 생각해보자. 공중에 붕뜬 느낌이 아니었을까? 아직 본인이 이룬 성공을 어떻게 누릴지도 모르는 나이다. 내가 22살이었을  주위에서 술을 즐겨 마시는 친구들은  취해 거리를 가다 유리병을 들고 바닥에 던지고 나서 깨진 모습을 보고 미친 사람처럼 웃는 경우도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과 시비를 붙기도 했다. 

한창 혈기왕성하고 스스로가 통제되지 않을 나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잘못에 대한 대가는 재판정에서, 그리고 손해를 배상하는 방식으로 이미 치뤘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멈춰야 한다.  뒤에 연기를 계속하는 게, 화면에 나오는  불편하면 그냥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된다.  배우가 알바를 하는  불편하다면  카페에 가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더이상 연기를 하지 못하게  것이고, 알바를 하기도 힘들어  것이다.

 대신  배우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생계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적극적이고 실랄한 비난은 직면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배우는 자신이 했던 행동을 반성하고, 어떤 일이든지 찾아서 생계를 해결함과 동시에 다른 친구들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이제 2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보다 훨씬  죄질이 나쁜 사람들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얼굴을 보이는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유독 그녀에게  악랄하게 굴었다.  그랬을까?  약하고, 작고, 만만해 보여서는 아닐까? 사회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행각을 보인 배우들 중에 연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작품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한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  적지 않은 이들은 세상을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이번 계엄사태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들도 마찬가지. 자신들이  많은 정보를,  논리적으로 가공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법치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자신의 의견이 무조건 맞다고 주장하며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한땀한땀 논리적으로 따지면 무조건 아니란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 잡아먹혀 때로는 개인에, 때로는 우리 사회 전반에 피로감과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보면  편으로는 불쌍하지만, 그들이 야기시키는 고통의 총합을 합해보면 과연 그들이 불쌍하다고   있을까 싶다.

카페 알바도 하고, 연극무대에도 서보려고 했던 것을 보면 어떻게든지 살아나려고 나름 발버둥을 쳤던  같다. 그것도 3년 동안. 사방이  막힌 느낌이 아니었을까.  아픔과 고통은 내가 직접 당한 적이 없기에 정확히  수는 없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