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연애와 상대의 조건에 대하여

조건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젊은 사람들, 소위 말하는 청년들 사이에는 '배우자 기도'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이들은 본인이 기도한 대로 배우자를 받았다면서 구체적으로 목록을 만들어서 기도하라고 하지만, 이전에 내가 썼던 글에서 밝혔듯이, 그건 신이 그 조건에 맞춰서 상대를 준 것이 아니라 본인이 그런 사람을 찾아서 결혼을 했을 뿐이다. 만약 기도하는 대로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 조건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결혼한 사람들은, 몇 년을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여전히 싱글은 교회 청년부의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의 가장 큰 한계는, 자신이 기도하는 대로 만난 배우자와의 삶이 때로는 행복하게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렇게 배우자 기도를 해서 '절대적인 존재'가 준 배우자가 완벽하지 않은 것은, 신이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인가? 완벽한 신이라면 사실 그 사람에게 가장 맞춤형인 사람을 선물해 주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에 대해서는 배우자 기도를 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반박할지가 궁금하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배우자 기도에 이렇게 반감을 갖는 것은 첫 번째로 한국교회에서는 '기도를 하지 않아서 결혼을 못한다'며 그걸 신앙의 잣대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 사실 완벽한 배우자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어린아이가 독약을 달라고 하는데 그 독약을 준다면 그게 부모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하는 대로 주는 것'이 항상 좋을까? 과연 우리는 어떤 배우자가 우리에게 가장 좋은지, 잘 맞는지를 알고 있는가? 

연애와 행복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가 이토록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 일부, 아니 어쩌면 상당수가 '조건'을 나열하는 것에 열렬하게(?) 반대를 하는 것은 연애와 결혼, 그리고 가정의 행복은 상대방이 어떤 조건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교회 누나들이 하도 그렇게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해서 20대 중반에는 목록을 작성해 본 적은 있었다. 그리고 그 조건들을 '모두' 가진 사람은 만난 적이 없지만 다양한 조합을 통해서 어쨌든 그 조건들을 한 번 이상씩 경험(?) 해봤지만 그 끝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그런 조건이 전부는 아니란 것이었다. 

조건의 의미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조건은 전혀 상관없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건도 '최대한'으로 추구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마다 누구나 상대를 이성으로 느끼기 위해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을 서로 다른 '최소한'의 조건은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까지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걸 무시하고 '괜찮을 거야' 혹은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하고 관계를 시작했다가 그러지 않을 경우 두 사람은 연인이, 부부가 되지 않은 것만 하지 못한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조건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이거는 봐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외모를 봄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을, 어떤 사람은 키가 큰 사람을, 어떤 사람은 얼굴만, 어떤 사람은 얼마나 균형이 잡혔는지를 보는 등 사람들이 보는 것이 다르지 않나? 어떤 사람은 상대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경제력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의 장래 기대수입을, 어떤 사람은 수입의 안정성을 볼 수도 있지 않나? 그러한 기준들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다름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연애나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그처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조건들은 상한선이 아니라 하한선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그러한 조건의 목록을 최소화해보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는 있다. 이는 그 조건들이 장기적으로 행복을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건의 숫자를 무조건 줄일 것은 아니고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게 그 조건이 중요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 진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말이다. 자신에게 그렇게 솔직하지 않은 사람은 무의식 중에 특정한 조건을 따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따지지 않는다고 착각하기에 오히려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조건을 인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 매거진의 앞의 글에서도 밝혔듯이, 연애는 혼자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이 생각하는 '조건'들은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조정되기도 하지만 사실 '이 사람과 만나는 것이 내가 혼자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할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무의미하다고도 할 수 없다. 물론,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혼자 있으면서 가장 행복한 것이 가장 효율적인 삶일 것은 말해 뭐하겠나. 많은, 아니 어쩌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일 뿐... 그렇다고 해서 더 불행해질 연애를 할 필요도 없지 않나. 

조건과 마음의 문제

그렇게 본인에게 솔직한, 상대에 대한 조건은 사실 예선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일 뿐이며 그러한 요소들을 갖췄다고 해서 우리가 상대와 곧바로 연인이 되거나 결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상대가 너무나도 완벽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성으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그와 같은 지점에서 가장 큰 실수를 하고는 한다. '만나다 보면 좋아지겠지' 또는 '이렇게 조건이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아직 연인관계라고 하기엔 호감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다면, 조금 더 만나면서 어느 방향으로든, 굳이 연인이나 연애라는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이상의 확신이 들 때까지 서로 알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상대가 어떤 조건을 가진 사람인지가 내게 행복을 반드시 담보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은 만나다 보면 좋아질 것이라고, 또는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은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며 연인 혹은 부부라는 틀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마음'이 아닌 '머리'를 중심으로 시작하는 연인 혹은 부부관계는 그 끝이 좋을 수가 없다. 이는 '마음으로만'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사랑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감정과 마음'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감정과 마음이 먼저 가더라도 이성으로 제어해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감정과 마음 없이 이성적으로만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잘못된 것이란 것이다. 연인의, 부부의 시작은 마음이어야 하기 때문에.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 > 연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애란 뭘까?  (0) 2020.01.25
놓친 사람이 그리워질 때  (0) 2020.01.22
연애에 필요한 노력에 대하여  (0) 2020.01.20
비교는, 절대하지 말자  (0) 2020.01.19
연애와 추행  (0) 2020.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