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이런 성경 부분을 읽으면 '무슨 하나님이 이렇게 까탈스럽고 이렇게 좋은 걸 많이 쓰라고 하지?' 라는 생각과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심지어 등잔불을 밝히는데 쓰는 기름까지 정해주는건 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그리고 뭐를 이렇게까지 규격을 맞춰서 까다롭게 한단 말인가?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내용은 현재에서 성경을 바라볼 때 중요한 의미를 갖고, 그 당시에도 그런 원칙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에서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이런 내용이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쓰여져 있는 것은 이 내용이 소설이나 허구가 아님을 보여준다. 만약 성경이 소설이나 특정한 인물이 만들어낸 허구라면 굳이 이런 내용을 쓰겠나?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라면 이런 기준을 어디에서, 왜 생각해낸단 말인가? 역설적이게도 이런 내용이 문서로 남아있고, 그것을 성경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은 이 성경이 진리이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이 기록된 것임을 입증한다. 사람이 종교를 만들기 위해서 또는 누군가 자신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면 이 내용은 굳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로 만들어냈다고 하기에는 그 내용이 필요 이상으로 구체적이다. 당시에는 기록할 매체조차 쉽게 없었을텐데 소설이나 신화를 만들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하나님께서 지키게 하신 내용에 할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과거에 왜 그런 까탈스러운 요구조건들을 지키라고 하셨을까? 그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성경을 갖고 있지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을 만든 한 분인 창조주를 기억할 매개체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 상당수는 아마 글도 읽지 못했을 것이며, 교리도 발달되지 않았을 것이고 율법도 정교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무엇이 있었을까? 그건 성전 밖에 없었다.
그들은 성전을 지으면서도 그 디테일들에 신경을 쓰면서 하나님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금이 사용되고, 모든 것을 구분하고 분별해서 사용하는 과정 자체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다듬고 정결하게 만드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좋은 것, 화려한 것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으니 화려하고 좋은 것으로 만들어진 성전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전 앞에서 겸허하게 했을 것이다. 그 기준점이 없으면 그들은 자연상태와 같이 아수라장을 만들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기억하자. 인간이 지금처럼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 교양을 차리고, 책을 읽고 점잖은 척을 하면서 살 줄 알게 된 시간은 200년이 되지 않는다. 200년전만해도 그렇게 교양을 차리는 척 하며 사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 사람들은 엄청 낙후된 지역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야만 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 관점에서 봤을 때 수천년전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요구를 하신 것은 이상하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런 도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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