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으로는 두 번째 퇴사지만 실제로는 첫 번째 퇴사다. 작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은 4대 보험도 적용받지 않았고 사업소득으로 비용을 정산받았으니까. 7월 마지막 주에 복귀했을 때는 4대 보험도 적용받았고, 근로소득을 받았다. 그러니 실제로는 이번이 첫 번째 퇴사다.
혹자는 겨우 3달도 안 되는 기간을 다니려고 들어갔냐고 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사실 나라고 알았겠나? 나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망설이기도 했다. 2달을 고민한 결정을 2달 만에 뒤엎을 것이라고는 나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나면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을 듯해서, 망설였다. 하지만 그 시기에 다른 제안이 들어왔고, 그 일은 회사 일과 병행할 수가 없었으며, 그 일이 훨씬 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보니 난 짧고 굵은 고민 끝에 퇴사를 선택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최소한 10가지 정도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정말 막 나가는, 신중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그만둔 가장 큰, 그리고 공식적인 이유는 이 회사 일을 함으로써 내가 해야만 하는, 대표에게 다시 조인할 때 겸업 허용을 요구했던 이유가 된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파트타임일 땐 그게 가능했으나 풀타임이 되는 순간 그 구도는 바뀌었고, 내가 책임감이 과해서인지 모르지만 작은 기업에서 나이도 가장 많고 공식적인 연봉도 가장 많이 받는 내가 개인적인 일 때문에 회사 일을 등한시하지는 못하겠더라. 그러다 보니 내가 키워나가야 할 개인 영역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 상황만 있었다면 그런 결정을, 그렇게 빨리 내리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회사를 대표가 끌고 나가려는 방향과 방법이 내 주관과 다르다는 것을 풀타임으로 들어와서야 느꼈다. 엄청난 차이는 아니지만, 그 작은 차이는 둘이 그리는 그림의 끝에는 큰 차이를 가져올게 분명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사적으로 10년 넘게 알아온 지인이자 생물학적으로는 내가 더 노쇠했다 보니 '대표님이 끌고 가는 대로 가지 뭐'라는 생각을 하게 되진 않더라. 나도 머리가 클 대로 컸고, 주관이 명확한 편이며, 스스로 끌고 나가는 힘이 없는 편은 아니다 보니 이 동행이 오래갈수록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겠더라. 그런데 이 회사는 대표가 시작해서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대표가 생각하는 대로 끌고 가는 것이 맞다. 이러한 상황에서 둘의 사적인 관계까지 다치기 전에 내가 물러서서 나오는 것이 맞겠더라.
여기에 더해서 시간이 갈수록 내 한계를 너무 절실하게 느꼈다. 난 사회생활을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시작한 사람이지만, 그 일보다는 공부를 한 시간이 훨씬 긴 사람이다. 법을 파면서. 물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지금도 할 수 있고 그 감각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시대에 디지털 마케팅은 그 정도 수준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수준에 이르렀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맥락은 잡겠지만, 내 전공영역에서 자신 있게 주장을 펼치는 것과 달리 이 바닥에선 내 생각이 있더라도 그걸 확신을 갖고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꽤나 많이 발견했다. 실수를 할까 봐, 내 지식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상태로 치열한 디지털 마케팅 시장에 있는 대행사의 시니어로 있는 건 민폐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설명을 할만한 마지막 이유는 지금 이 회사에서 내 몸값을 받고 이 정도 일을 하는 건 회사에 피해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대표가 내게 주겠다는 연봉을 내가 스스로 낮췄고 12년 전에 첫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보다 적은 돈을 받았기에 그 금액이 절대적인 기준에선 엄청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갓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국책연구원에 취업했을 경우 받았을 연봉보다 2천만 원 정도 적은 금액을 받았기에 혹자는 내 커리어에 비해서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내 입장이고, 중소기업에서는 내가 받는 돈이 과연 그 회사의 상황에 비춰봐서 합당한지도 고려해야 한다. 대표는 내가 내부 관리를 해주고, 구성원들과 관계 형성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가 있고 본인은 그 비용으로 그 정도는 지불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내 입장은 조금 달랐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부분은 궁극적으로 대표가 일정 부분 끌어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다. 대표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것도 정식으로 파트너도 아닌 사람이 그 부분을 전담하면 그 회사는 분열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냉정하게 봤을 때 이 회사는 그 정도 일을 전담할 사람을 그 정도 연봉을 주고 채용할 규모도 아니었다.
내가 과도한 비용을 받고 있고, 이 회사의 입장에서 하고 있는 지출의 값어치를 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은 내가 일하는 것에 비해서 너무 적게 받는단 생각이 드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더라. 거기다 위에 있는 상황들이 다 중첩해 있고, 그 외에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사소한 상황, 일과 이유들이 있다 보니 그것들이 상호작용을 해서 '나가야겠다'를 넘어서 '내가 나가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더라.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모든 결정에 있어서 그러하듯이 짧지만 굵게, 더 이상 고려할 변수가 없단 확신이 들 때까지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다. 안정을, 4대 보험을 포기하고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 지를 알면서 프리랜서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안정된 삶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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