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고민을 짧고 굵게 하는 편이다. 고려할 수 있는 모든 변수들을 감안했을 때, 내가 어떤 결정을 했을 경우 그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계산해 보고, 더 이상 고려할 변수가 없다고 판단되거나 나머지 부분은 알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 시점에 결정을 한다. 내 인생의 모든 결정에 있어서 그 패턴은 변한 적이 없다. 심지어는 감정의 영역이 큰 연애의 시작과 끝에서도.
고민의 시작은 2-3주 전이었던 것 같다. 내 개인 영역에서 해야 하는 일은커녕 브런치에서도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아지면서 '내가 평생 업으로 삼을 일이 아닌 걸 계속 이렇게 해야 하나?'란 회의가 들더라. 그래서 어떻게든 회사 안에서 내 색을 입히고, 내가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면서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일을 해보기 위한 시도를 했다. 지금 있는 이 회사에서 나이는 제일 많고, 직위로도 2-3번째 정도로 들어왔기에 해 볼 수 있는 시도들을.
그런데 그 시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조용히 뭉개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이상 이 회사와 동행하기가 힘들겠단 생각이 들더라. 뭉개짐과 그 결론이 나오는 기간은 워킹 데이로 2-3일에 불과할 정도로 짧았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느껴진 전조 증상들과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돌아오는 피드백들을 종합했을 때 이 회사와의 동행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기에, 아무리 지인의 회사라고 해도 내 인생을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다시 조인할 때 내가 스스로의 연봉을 깎은 것도, 대표에게 '난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사람인데도 괜찮겠냐?'는 말을 몇 번씩 물어본 것도 이런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인의 회사가 아니라면 애초에 조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파트타임으로 있을 때 같이 갈 수도 있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어도, 난 오퍼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무려 9개월 동안 손발을 맞춰봤고, 그 과정에서 같이 오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과 원칙적으로 풀타임으로 일하는 건 분명히 달랐고, 풀타임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빠르게 보이더라. 그래서 결정을 빨리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정은 빨라야만 했다. 나를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그렇지 않으면 내 안에도 부정적인 에너지가 쌓일 것이고, 그게 회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으니... 내가 뭔가를 잘 숨기는 편은 아니라...
대표는 다시 파트로 내가 하던 일 중 본인이 잘 못하는 부분만 맡아줄 수 없냐고 물었고, 생각해 보겠다고는 했지만 추석 연휴 내내 고민해 본 결과 그건 나를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 주중에 exit 시기를 못 박을 예정이다.
약 2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의 프리랜서를 겸업하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조금 더 세밀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기에 그 시간이 참 많이 힘들었고, 단기적으로는 내가 계속하고자 하는 일에 시간을 쓰지 못하게 되어 손해가 발생했지만, 역으로 내가 장기적으로 가고자 하는 길을 더 확신을 갖고 갈 수 있게 해 줬다.
그래서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어줬던 대표가 고맙고, 계속 동행하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 나를 믿고 따라왔던 아이들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고, 결정하고 나서 입 밖에 내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걸 보면, 지금 내가 갈 길이 내 길은 맞는가 보다.
조만간 다시 4대 보험 없는 삶으로 복귀. 조금 힘들더라도 가고자 하는 길이 있기에 버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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