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의 먹는 것까지 통제하셨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실 것이다. 아니, 생물학자들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들의 특성을 아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있을지, 그에 대한 연구가 있는지를 한번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그걸 모르더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먹는 것을 까탈스럽게 통제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하루에 세 끼 정도 먹는데, 당시에 그 문화가 다르다 하더라도 최소한 한 번은 식사를 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적어도 1-3회 이상 하나님을 생각하고 의식해야 했다.
이전 묵상들에서도 계속해서 쓴 얘기지만 우린 이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제사를 드리긴 하지만 그걸 매일 드리는 것은 아니다. 제사장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일반인들이 가장 하나님을 자주 기억하고 잊지 않도록, 하나님 안에 거하도록 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건 식사 시간 때마다 하나님을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집에서 식사 기도가 중요시 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아니, 그래야 하는게 맞다. 그때 잠시만이라도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들은 그런게 필요한 시대에 살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먹지 않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될 수 있다. 다른 이방족속들이 먹는 것을, 만약에 맛있게 먹는 것을 본인들이 먹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정말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신뢰하지 않는다면, 존재를 의심한다면 굳이 그 규례를 지킬까? 아닐 것이다. '먹어도 아무 이상 없는데 왜 굳이 먹지 말라는거야? 모세가 제대로 들은거 맞아?'라고 생각하고 먹을 것이다. 그 규례는 그들에게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현대 사회에서 그런 리트머스 시험지는 뭘까? 기도와 말씀일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을 1순위로 둔. 그런 의미에서 '에~이 그거 안한다고 하나님이 죽이지 않아'라는 말은 성립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그 말은 세상의 기쁨을 하나님 앞에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벌하지 않으실 것을 피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이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은 피하는 삶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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